2020년 12월 10일부터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이하 전자문서법) 일부 개정안이 시행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정보통신기술 발달에 맞춰 종이 문서 대신 전자문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전자문서의 법적 효력을 명확히 하고, 종이 문서를 스캔해서 변환한 문서(전자화문서)를 '공인전자문서센터'에 보관하는 경우 해당 종이 문서를 폐기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했다.
법률 개정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전자문서 활용 및 확산이 가속되고, 2023년까지 종이 문서 보관량 약 52억장 및 유통량 약 43억장 감소로 약 1조1000억원의 비용 절감과 약 2조1000억원 규모의 전자문서 신규 시장 창출 등 경제적 효과를 기대했다. 그로부터 약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전자문서는 얼마나 많이 확산하고 있고, 전자화문서를 통한 종이 문서의 폐기는 얼마나 많이 이뤄지고 있을까.
개정안에서 '서면 작성'으로 명시된 각종 문서를 전자문서로 작성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이 많아진 것은 분명하다. 전자 결재나 ERP 시스템 구축을 통해 많은 업무를 디지털화한 대기업에서도 법인 인감이나 서명이 필요한 계약서, 신청서, 동의서, 인수증 등은 여전히 종이 문서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 이러한 업무를 전사적으로 전자문서로 전환하고자 검토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중소기업에서도 그룹웨어 도입이나 근로계약서 및 보안 각서, 동의서 등을 전자문서로 전환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의 움직임에 맞춰 중소기업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도 많아지고 있다. 조금 더디기는 하지만 분명히 시장은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전자문서 사용 이슈나 문제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자문서의 법적 효력 및 서면 요건은 명확해졌지만 전자계약 시 사용되는 '전자서명'에 대한 법 해석에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전자계약은 계약 당사자가 계약서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어야 법적 효력이 인정된다. 전자문서법과 같은 시기에 시행된 전자서명법 개정안에 따라 공인전자서명제도는 폐지됐고, 전자서명은 기존 공인전자서명에서 '서명자의 실지 명의를 확인할 수 있는 전자서명'으로 변경됐다.
그럼 서명자의 실지 명의를 확인할 수 있는 전자서명이란 무엇일까. 아쉽게도 전자서명법에는 전자서명 시 실지 명의를 확인하는 방법이나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향후 다양한 인증 및 새로운 방식의 신원 확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들을 포괄적으로 담기 위해 법 조항에서는 개념적인 표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법 해석을 구체화하기 위해 2015년 금융권의 요청에 따라 '비대면 실명확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는 금융실명법과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른 실명 확인을 다음과 같은 '복수의 비대면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외에도 기업 내 다양한 계약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전자서명에 대한 법적 해석이나 가이드라인이 제공된다면 전자문서 시장 확산에 속도가 더 붙을 것이다.
그렇다면 종이 문서와 전자화문서의 이중 보관 문제는 얼마나 해결되었을까. 각 산업 영역에서 보관하고 있는 종이 문서를 폐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종이 문서의 전자화가 이뤄져야 하는데 일반 전자화가 아닌 공인전자문서센터와 연계된 신뢰 스캔 방식의 전자화 처리가 필요하다. 아직은 한국인터넷진흥원에 전자화문서 관리규정을 등록하고 전자화 작업장에 대한 심사를 통과한 기업이 많지 않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전자화문서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해 관련 고시와 평가 지침, 기술 규격을 대폭 완화함에 따라 최근 전자화 작업장 및 공인전자문서보관소 사업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자화 업무 위탁 규정을 신설해서 종이 문서 보관자가 전자화 서비스 사업자에 업무 위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전자화 작업도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의 경우 은행·보험 등 금융기관, 변호사·세무사 등 전문서비스업과 같이 문서가 대량 발생해 종이 문서로 보관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는 산업에서 우선적으로 공인전자문서센터를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타 산업 분야 역시 법적 준수 사항 또는 업무 생산성 등의 이유로 센터 이용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공 분야에서는 현재 중앙 및 지방 공공기관과 공기업 등에서 공공기록물 외부 보관 금지 등의 규제로 말미암아 많은 보존 문서를 자체 보관하고 있는데 이를 선진국처럼 정부가 인정한 공인전자문서센터 등 외부에 보관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개별 보관에 따른 비효율성과 중복 투자를 줄이고 전자문서 시장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자문서 수요와 함께 기존에 보관하고 있는 수많은 종이 문서의 전자화 및 보관에 대한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자문서 활용 및 확산을 저해하는 규제가 남아 있다. 전자문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및 규제 개선이 급선무다. 이와 더불어 민간 분야에서 다양한 신규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도록 전자문서 기술 및 산업 현황을 반영하고 관련 분야 지원을 확대해 나간다면 대한민국의 디지털전환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박미경 포시에스 대표 mkpark@forcs.com
〈필자〉 박미경 포시에스 대표이사는 27년 동안 전자문서 분야 경험을 쌓았다. 전자문서 시장 성장 및 디지털전환을 선도하고 전자계약 서비스로 중소기업 비대면 업무 환경 구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소프트웨어 산업발전 유공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제11대 한국여성벤처협회장과 제7대 한국전자문서산업협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국무총리 직속 정보통신전략위원회 위원 등 산업발전을 위한 활동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