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취향의 시대, 韓 엔터테인먼트 미래는

전범수 한양대 교수
전범수 한양대 교수

신기술 발전은 감각을 확장시킨다. 아날로그 기술로 통하던 감각 세계가 디지털 세계로 넓어지고 있다. 디지털 세계는 우리가 경험해 온 감각 세계 바깥에 존재하는 또 다른 공간이다.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특정 지역 또는 문화의 테두리 안에 살아 온 우리의 감각 체계는 디지털 기술 도움으로 글로벌 취향을 느끼고 공유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 삶은 이미 글로벌 세계와 직접 연결된다. 감각으로 느끼는 공간 인식은 한국이라는 공간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코로나19와 같은 글로벌 질병, 인플레이션이나 경제 침체 등과 같은 쟁점 모두 글로벌 세계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세계를 하나로 묶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을 통해 지역 정보와 커머스 및 동영상 콘텐츠 등이 점차 글로벌 공간, 심지어 국경도 없는 가상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즐거움의 콘텐츠를 만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역시 이러한 트렌드와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음악이나 뮤직비디오, 동영상 콘텐츠가 해외에서 인기몰이하는 일은 흔해졌다. 국내 아이돌의 K-팝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웹툰 등 국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대한 글로벌 수요는 넘쳐나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인기 있는 콘텐츠 역시 빠른 속도로 국내 시장에 유입되고 소비된다. 교류 속도는 빨라지고 범위는 다양해졌다. 세계인의 취향은 점차 평균화되고 동질화되는 추세를 띠고 있다.

동질화되고 표준화된 글로벌 취향이 존재한다는 것은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기회이자 위기다. 한류로 촉발된 국내 음악, 웹툰, 웹소설, 동영상 콘텐츠 등을 글로벌 시장에 더 많이 소개하고 유통할 가능성은 새로운 기회다. 인터넷 플랫폼만 있으면 동시에 세계 모든 지역을 대상으로 국내 콘텐츠를 자유롭게 유통할 수 있다. 제대로만 만들면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우리 콘텐츠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반면 다른 거대 글로벌 기업 역시 글로벌 이용자 취향에 적합한 플랫폼과 콘텐츠를 노리고 지배하려 한다는 점은 위기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은 이미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을 선점, 장악하고 있다. 이용자 콘텐츠 시장은 유튜브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이들은 인공지능(AI)을 통한 새로운 이용자 알고리즘 개발이나 거대 빅데이터를 보유, 글로벌 이용자를 모으고 활용하는 점에서 탁월하다.

또 새로운 성장 엔진을 추가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메타는 가상현실 사업 분야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가상현실(VR) 공간에서 디지털 상품 거래와 새로운 인플루언서 등을 개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비디오 게임 스튜디오를 인수하고 게임사업 분야에 진출했다. 프랑스, 독일, 인도 등 주요 국가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도 글로벌 동영상 콘텐츠 생태계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인수합병과 신사업 확대 전략에 몰입하고 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도 웹툰·웹소설 등 새로운 콘텐츠 자산을 바탕으로 스토리·음악·미디어 콘텐츠 IP를 결합하거나 해외 거대 콘텐츠 기업 인수, 글로벌 팬덤 플랫폼 구축 등 새롭게 등장하는 글로벌 취향에 맞는 사업 구조를 모색하고 있다. 쟁점은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전략이 글로벌 이용자 취향을 충족하는 동시에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차별화한 콘텐츠 브랜드를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단기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거나 글로벌 콘텐츠와 무관한 사업 분야에 대한 다각화 전략보다 오히려 그동안 '성공 치트키'로 활용해 온 창의적이고 다양한 콘텐츠 기획·제작·투자 강화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이에 맞는 정부 규제나 정책도 더 보완되고 재편돼야 할 때다.

디즈니 사례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지향해야 할 미래 방향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디즈니는 1950년대부터 콘텐츠 IP 가치 확장 모델을 채택해 왔고, 그 가치는 60년 이상 지속됐다. 디즈니는 자사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핵심이 비즈니스에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 집중해 왔다. 픽사, 마블, 루카스 필름 등 기업을 인수해서 브랜드 가치를 보완·확대했다.

이처럼 지속 가능한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강화 전략이 글로벌 취향 시대를 맞아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가장 필요한 목표가 돼야 할 시점이다.

전범수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 ccblade2@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