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5월 16일. 정부는 대통령령 제6677호로 종합과학기술심의회(현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 설치 규정을 공포했다. 종합과학기술심의회는 국내 과학기술진흥 정책에 관한 첫 최고정책조정기구였다. 심의회 설치는 과학기술 행정 체제의 중대한 변화였다. 정부가 과학기술을 국정의 중심에 놓겠다는 의미였다.
설치 근거는 1967년 1월 16일 제정한 과학기술진흥법이다. 과학기술진흥법을 처음 제정할 당시는 과학기술처가 출범하기 전이었다. 그 무렵 국내 과학기술정책 산실은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이었다. 정부는 과학기술진흥법에서 과학기술 진흥의 중요한 사항을 조언할 과학기술진흥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장은 경제기획원 장관이 맡는다고 규정했다. 그 후 1967년 3월 30일 박정희 대통령이 과학기술처를 출범시키자 정부는 과학기술진흥법을 일부 개정해서 경제기획원 장관이 맡던 과학기술진흥위원장을 과학기술처 장관이 맡도록 했다.
그러나 신설 부처인 과학기술처 장관이 과학기술정책에 정부 총괄 조정 역할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과학기술 관련 예산 확보가 난제였다. 과학기술처는 대안을 찾다가 1972년 11월 국무회의 안건으로 과학기술진흥법 일부 개정안을 제출했다. 당시 과학기술처 진흥국 사무관으로 이 일을 담당한 한기익 전 과학기술처 기술정책관의 설명이다. “정부의 과학기술진흥 종합계획 수립과 그에 수반하는 예산을 확보하려면 위원회를 격상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기술진흥위원회를 없애고 대신 국무총리 직속의 종합과학기술심의회로 격을 높여서 총리가 의장직을 맡아 과학기술 정책 전반을 총괄하도록 했습니다.”
정부는 이런 내용의 개정안을 같은 해 12월 18일 법률 2377호로 공포했다. 과학기술처는 과학기술진흥법 개정에 따라 1973년 4월 4일 종합과학기술심의회 운영규정안을 국무회의에 제출했다. 규정안은 총리가 심의회 의장직을 맡고 위원은 16명으로 구성키로 했다. 위원은 경제기획원 장관, 내무부 장관, 재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문교부 장관, 농림부 장관, 상공부 장관, 건설부 장관, 보건사회부 장관, 교통부 장관, 체신부 장관, 과학기술처 장관에다 국무총리가 지명하는 국무위원 1명과 민간인 위원 3명이다.
심의 안건은 △과학기술진흥에 관한 종합계획 수립과 주요 정책 조정 △과학기술진흥에 관한 예산 조정 △국가 중요 연구개발사업 선정 △인력개발에 대한 종합계획 △과학기술 자격제도 운영 △기술개발 자원 조사와 개발 조정 △전 국민의 과학화 △연구단지 설치·운영에 따른 제반 시책 △기타 과학기술 진흥에 관한 중요 사항 등이었다. 국무회의는 5월 9일 이상과 같은 심의회 규정을 의결했다.
정부는 같은 해 7월 1일 공석인 민간 심의회 위원으로 △김윤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한심석 서울대 총장 △한상준 한국과학기술연구소장 등 3명을 위촉했다. 민간위원 위촉으로 심의회 구성은 마무리했다. 제1차 심의회는 1973년 7월 27일 중앙청 회의실에서 관련 부처 장관과 민간위원 등이 전원 참석한 가운데 김종필 총리 주재로 열렸으며, 이날 과학기술처가 마련한 '장기인력수급 계획과 정책방향'을 심의했다. 당시 정부는 중화학공업 육성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 과학기술처는 1981년까지 필요한 과학기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공계 대학 정원을 조정하고, 군 복무 기간에 병사들에게 1인 1기(技)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처는 기계·금속·화학 분야 대학 정원을 증원하고 실험실습 시설 확충, 기능인 양성 교육, 기술자격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제2차 심의회는 1979년 4월 13일 중앙청 상황실에서 최규하 총리 주재로 열렸다. 심의회는 이날 '국가연구사업 추진계획'과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5월 12일에는 효율적인 심의회 운영을 위해 심의회 산하에 11개 전문분과위원회를 두기로 했다. 10개 분과위는 총괄조정분과, 기초과학전문분과, 기계전문분과, 전기·전자전문분과, 화학·화공전문분과, 금속·재료전문분과, 에너지자원분과, 환경·보건전문분과, 농림·수산전문분과, 인문·사회과학전문분과 등이다.
전문분과위는 위원장 1명과 위원 9명 이내로 구성하며, 관련 부처 공무원과 해당 분야 전문가 가운데 과학기술처 장관이 위촉하도록 했다. 회의는 이후 비정기로 열렸고, 1979년부터 1983년까지는 격년으로 개최됐다. 3차, 4차 심의회는 1981년 5월과 1983년 6월 각각 열렸다. 5차 심의회는 7년 만인 1990년 10월 25일 오전 10시 과학기술처 회의실에서 강영훈 총리 주재로 열렸다.
심의회는 이날 과학 입국을 앞당기기 위해 국산 항공기 등 10개 대형국책 과제를 관계부서 공동으로 개발키로 확정했다. 10대 국책과제는 정보화 기술과 자동화 기술, 에너지절약 기술, 농수산 정밀화학 기술, 신공정 신제품 기술, 신소재 생명공학, 원자력 기술, 항공기 국산화, 환경의료와 복지 기술 등이다. 원활한 운영을 위해 각 부처에 과학기술담당관(1~3급 상당)을 지정하고 총괄조정위원회를 구성해서 부처 간 종합조정 실무를 담당키로 의결했다.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은 이날 “전국 대학에 우수 연구집단 100개를 육성해서 대학 연구를 활성화하고 106개 정부기관 산하 전문연구소, 980여개 기업부설연구소와 산업기술연구소 등 연구개발 활동을 촉진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펼쳐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정 장관은 “24개 이공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자율경영체제로 전환해서 연구능률을 높이고, 고속전철기술 개발 사업단 등 39개 국책연구개발단을 설치·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1992년 5월 12일 심의위원에 외무부 장관과 환경처 장관을 새로 추가했다. 과학기술장관회의는 김영삼 정부 들어 신설됐다.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조치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6년 1월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과학기술 진흥정책과 예산의 종합조정을 위해 종합과학기술심의회를 분기별로 개최하고 경제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과학기술장관회의를 구성, 운영하라”고 지시했다.
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과학기술처는 같은 해 2월 14일 과학기술장관회의 규정안을 마련해서 국무회의에 상정했다. 이 규정안은 같은 해 3월 11일 대통령령으로 공포했다. 과학기술장관회의 의장직은 경제기획원 장관이 맡아서 과학기술진흥에 관한 사항, 종합과학기술심의회에 회부한 사항, 정부의 과학기술 진흥정책과 연구개발 계획 관련 조정이 필요한 사항 등을 심의키로 했다. 위원은 외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교육부 장관, 농림수산부 장관, 통상산업부 장관, 정보통신부 장관, 환경처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 과학기술처 장관과 기타 심의 안건과 관련이 있는 해당 부처 장관으로 구성했다. 과학기술장관 회의는 상정 안건의 관련 부처 간 사전 실무 협의와 조정을 위해 총괄조정분과전문위원회를 두기로 했다.
2004년 9월 1일. 국회는 노무현 정부가 제출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의결하고 과기부총리제를 도입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을 12개 국정과제의 하나로 추진했고, 이를 위해 과학기술부를 국가 과학기술혁신정책의 총괄·기획·조정·평가를 담당하는 부총리 부처로 승격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10월 18일 청와대에서 오명 초대 과기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과기부총리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의 1차 편성권도 행사했고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 등 19개 부처 및 외청의 과학기술정책도 총괄 조율했다.
경제기획원 장관이 맡던 과학기술장관회의 의장직도 과기부총리가 맡았다. 과학기술장관회의는 과기부총리 주재로 매월 열려서 범정부 차원의 많은 과학기술진흥 현안을 다루었다. 그러나 과기 부총리제와 과학기술장관회의는 이명박 정부 들어와 정부 조직 개편으로 폐지됐다. 과거 속에 숨은 과학기술장관회의는 11년 만에 문재인 정부 들어와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로 부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26일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지속 가능한 혁신성장과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신설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같은 해 10월 5일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 규정을 제정·시행했다. 첫 회의는 같은 해 11월 1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위원장인 이낙연 총리 주재로 개최됐다. 이후 모두 20회에 걸쳐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가 열려 과학기술진흥 정책을 논의했다. 마지막 회의는 지난해 12월 2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부겸 총리 주재로 열렸다. 지속성을 유지해야 할 과학기술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폐합의 갈림길에서 요동쳤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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