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법은 분리 독립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사와 연구 기능을 분리 독립시키겠습니다.” 1988년 4월 12일 이관 과학기술처 장관은 청와대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주요 업무계획을 보고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한 지붕 두 가족 살림으로 바람 잘 날이 드물던 KA
이현덕 대기자의 과학기술이 미래다
전자신문은 '이현덕 대기자의 과학기술이 미래다'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 과학기술 역사를 입체 조명합니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 온 한국 과학사를 종합 정리해서 미래 과학기술 진흥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입니다.
시리즈는 총 4부로 연재합니다. 1부 과학기술의 발자취, 2부 대통령과 과학기술 국정과제, 3부 과학기술 패권의 길, 4부 미래 과학기술과 마지막 좌담회 형태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필자인 이현덕 대기자는 전자신문에서 논설실장, 편집국장, 논설주간으로 재직했습니다. 지금은 대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를 위해 지난 1년여 동안 자료수집은 물론 각계각층의 인물을 심층 인터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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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한국 과학기술 산실 'KIST'…통합 8년 5개월 만에 독립 새출발2024-11-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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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행개위, 과기행정 최종 건의안…“과학기술 우위주의 확립해야”
끝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대통령께 건의할 최종 보고서 내용을 확정합시다.” 1989년 7월 18일 신현확 위원장(전 국무총리)은 행정개혁위원회 전체 회의를 열었다. 1년 2개월 동안의 행정개혁위원회 활동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다. 행
2024-11-12 16:00 -
〈142〉기초과학연구진흥법 제정…기초과학육성 도약대
기초과학 육성에 대한 이상희 과학기술처 장관의 소신은 확고했다. 이상희 장관은 1988년 12월 장관 임명 전부터 기초과학 연구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1988년 6월 학계 인사 중심으로 기초과학정책연구회(가칭)를 구성했다. 당시 서울대 자연대학 장세희 교수와
2024-11-05 16:00 -
〈141〉대통령 주재 '과학기술진흥회의' 신설
초여름에 접어든 1989년 6월 1일. 청와대 경내는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각계 인사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과학기술진흥회의를 설치, 운영하겠습니다.” 이상희 과학기술처 장관은 이날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과학기술처 주요 현안에 대한 업무를
2024-10-23 06:58 -
〈140〉대통령 직속 과학기술자문회의 설치…위원장에 조완규 서울대 총장
새로운 출발이었다. “과학기술자문회의는 과학기술계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인사들을 폭넓게 참여시켜서 미래를 향한 과학기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1989년 1월 25일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과학기술처 새해 업무 보고를 받고 이같이 지시했다. 이상
2024-10-15 16:00 -
〈139〉슈퍼컴퓨터 시대 개막…'크레이 2S' 설치 가동
한국에 슈퍼컴퓨터 시대가 열렸다. 5년 만의 값진 성취였다. 1988년 12월 6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시스템공학센터(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는 국내 처음으로 '슈퍼컴퓨터 2S'의 가동식을 개최했다. 슈퍼컴퓨터 시대의 개막을 알리
2024-10-01 16:00 -
〈138〉과기처 신임 장관에 이상희 박사…6공화국 들어 두 번째 개각
1988년 12월 5일 오전 10시 노태우 대통령은 6공화국 들어 두 번째 개각을 단행했다. 10개월여 만의 내각 전면 개편이었다. 국무총리를 비롯해 24개 부처 가운데 20개 부처 장관을 교체했다. 국무총리 서리에는 강영훈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을 임명하고 부총리 겸 경
2024-09-24 16:00 -
〈137〉행정개혁위 출범…'국가과학위원회 설치' 건의
1988년 5월 12일. “정부는 중앙과 지방 기능 재조정을 위해 대통령 자문기구로 행정개혁위원회를 발족합니다.” 김용갑 총무처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발표했다. 김 장관은 “이 위원회는 1년 한시적으로 운영하며 △정부 중앙과 지방 기능 재조정, 각 부처
2024-09-03 16:00 -
〈136〉'기술혁신과 행정체제' 심포지엄…과학기술 개발은 지상과제
마치 봇물이 터진 듯 했다. “과학기술처를 부(部)로 확대해야 한다.” “과학기술 연구개발비를 5%로 늘려야 한다.” “연구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기술혁신과 바람직한 행정체제에 관한 심포지엄’이 1988년 5월 30일과 31일 이틀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2024-08-27 16:00 -
〈135〉제6차 5개년계획 과학기술부문 수정…1993년까지 64M D램 개발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뀐다. 6공화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 시절인 1988년 1월 25일. 정인용 당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이날 오전 민주정의당 당사에서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에게 ‘당면 주요정책과제 보고’를 통해 “제6차 경제사회발전 5개
2024-08-13 16:00 -
〈134〉기초과학의 뿌리…기초과학연구지원센터 설립
“올해 기초과학지원센터를 설립하겠습니다.” 6공화국 출범 후 이관 과학기술처 장관은 1988년 4월 12일 노태우 대통령에게 한 첫 업무보고에서 이같이 밝혔다. 노 대통령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학기술처는 이후 기초과학지원센터(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설립에 박
2024-08-06 16:00 -
〈133〉6공화국 첫 과기처 업무보고…과학기술부로 개편 추진
대통령 업무보고는 각 부처의 가장 큰 연례행사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J씨의 말. “각 부처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한 해 추진할 주요 업무계획을 확정하고 이를 진행합니다. 따라서 대통령 업무보고는 각 부처에게 연중 가장 중요하고 큰 일입니다.” 1988년 각 부
2024-07-30 16:00 -
〈132〉6공화국 첫 과기처 장관에 이관 울산대 총장
“누가 새정부 내각에 들어간데?” “그걸 알면 내가 여기 있겠어?” 1988년 2월 25일 제6공화국 출범을 앞두고 관가 최대 관심사는 단연 새 내각 구성이었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 부처 장관 인사를 놓고 이곳저곳에서 자천타천의 하마평이 나돌았다. 부처마다 누가 장관
2024-07-23 16:00 -
〈131〉13대 노태우 대통령 취임…제6공화국 출범
1987년 6월 29일.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표위원은 이날 오전 10시 중앙당사에서 민주화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이른바 민주화 6·29선언이었다. 선언 내용은 △여야 합의 아래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하고, 새 헌법에 따라 1988년 2월 평화적 정부 이양을 하고 △김대
2024-07-16 16:00 -
〈130〉전두환의 과학기술 리더십
5공화국의 과학기술 지향점은 기술 국산화였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모든 역량과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새 기술을 익히고 개발하는 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산업기술은 모방 의존형에서 창조적인 연구개발로 들어가야 했다.”(전두환 회고록2
2024-07-09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