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월 12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중앙청 제1 회의실에서 열린 연두기자회견에서 전국민 과학화운동을 주창했다. 과학기술정책의 새 전략이자 과학기술 확산을 위한 범국민 과학화운동의 서막이었다. 박 대통령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전국민 과학화운동 전개를 선언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이제부터 전국민 과학화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과학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우리나라 국력이 급속히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어 “과학기술 발달 없이 우리는 절대로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없다”면서 “초등학교 학생부터 대학생, 사회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한가지씩 기술을 습득하는 '전국민 과학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민 과학화운동은 새마을운동에 이어 박 대통령이 주창한 두 번째 범국민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기존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전근대적인 의식에 젖어있던 국민 의식을 개혁하는 운동이기도 했다. 닷새 후인 1월 17일.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과학기술처를 초도 순시해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으로부터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받았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전국민 과학화운동의 구체적인 추진방안을 과학기술처 중심으로 관계 부처와 전문기관과 같이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과학기술 발전은 과학기술인 등 특정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참여해 전기나 자동차 등 필요한 기술을 하나씩 배워 국력 배양에 동참해야 한다”면서 “군 장병들도 1인 1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과학기술 발전은 민족 웅비의 길이며 과학기술 발전이 곧 미래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라며 “과학기술 진흥으로 조속한 산업 고도화와 공업국가 도약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같은 해 1월 23일.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민 과학화운동을 올해 과학기술 행정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 장관은 “과학기술 풍토조성과 과학기술 기반 구축, 산업기술의 전략적 개발 등을 올해 과학기술 행정의 기본방향으로 삼아 범국민 과학화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최 장관은 1971년 장관 취임 후 국민 의식개혁 없이 과학기술이 뿌리내릴 수 없다는 소신에 따라 과학기술처 진흥국에 과학기술 풍토조성과를 설치했고 과학기술 풍토조성을 위한 방안을 수립해 추진했다.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의 회고록 증언. “전국민 생활을 과학화하는 운동은 일시적인 일이 아니다. 이 운동은 과학자나 기술자, 교육자만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온 국민이 계속 추진해야 할 국가 과제였다. 과학화운동의 기본 목표는 국민의 의식구조를 개혁하는 일이었다. 그런 만큼 국민 의식구조를 합리성과 능률성, 창조성을 개발하는데 목표를 뒀다. 이를 위해 추진한 것이 국민 1인 1기(1人 1技) 습득과 생활의 과학화, 기술자립화 운동이다. 과학화운동을 전개하면서 나는 개발도상국에서 새삼 대통령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감했다. 박 대통령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강력한 의지가 없었다면 전국민 과학화운동을 새마을운동과 연계해 범국민운동으로 추진하지 못했을 것이다.”(불이 꺼지지 않은 연구소)
과학기술처는 진흥국 중심으로 구체적인 전국민 과학화운동 추진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백영학 당시 과학기술처 진흥국장(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의 생전 회고. “전국민 과학화운동은 기능에 따라 소관사업을 부처별로 추진하고 과학기술처는 기본계획 수립시 사업의 종합조정 역할만 담당했습니다. 첫해는 과학기술처가 사업추진 방향을 제시하고 부처별로 추진할 사업을 결정했습니다.”
과학기술처는 전국민 과학화운동의 기본 방향을 △전국민의 기술화 △국민생활의 과학화 △국민사고(思考)의 과학화 △산업기술 개발촉진 등 4개 분야에 두기로 했다. 이 운동은 과학기술처가 주관하며 경제기획원과 문교부, 내무부, 상공부, 농림부, 문공부 등 관계 부처와 학계, 과학기술단체 등이 참여해 구체적인 추진 사업을 마련키로 했다. 또 근면, 자조, 협동 정신을 바탕으로 잘살아보자는 새마을운동과 병행해 추진키로 했다.
과학기술처는 3월 말까지 부처별 사업계획을 종합해 종합과학기술심의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최종 추진안을 확정짓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당시 풍토조성과장 직무대리로 이 업무를 담당했던 한기익 전 정책기획관의 회고. “기본정책 방향안을 작성해 국장을 거쳐 최형섭 장관에게 보고했습니다. 계층과 대상에 따라 목표를 정해 부처별로 추진할 사업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과학기술처는 종합 조정만 담당했습니다.”
최형섭 장관은 과학화운동을 범국민 운동으로 지속해 추진하려면 정부 주도가 아닌 순순한 민간기구에서 전담해 진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최 장관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현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과학화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다. 같은 해 3월 12일.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은 “전국민 과학화운동을 올해 핵심 사업으로 정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재단은 “새마을부녀회와 협의해 주부생활 강좌 개최, 전국 과학독서회 설립, 학생 과학문고 보급 사업 확대, 과학영화 상영, 정밀기계 공업생에게 장학금 지급 등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3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전북 전주시 전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전국교육자대회에 참석해 전국민 과학화운동을 재천명했다. 문교부가 주최한 이날 대회에는 민관식 문교부 장관과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 각 대학 총장, 시·도 교육감, 전국 초중고교 교장, 과학교사 등 5000여명 교육자들이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치사를 통해 “농어촌의 획기적 발전과 중화학공업 육성 그리고 수출 확대라는 국력 배양의 3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학기술 진흥이 가장 시급하다”며 “전국민 과학화운동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전국민 과학화운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공업고교 증설과 기술자 양성, 기술교육 내실화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개회식이 끝난 후 최규남 박사(전 문교부 장관)가 '한국 민족의 과학적 재능과 과학기술 방향',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이 '국력배양과 국민의 과학기술운동'이란 주제로 각각 기조강연을 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전국민 과학화운동과 실천 교육 선도 △1인 1특기 배우기 권장 △1교 1과제 연구개발 등 5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튿날인 3월 24일 민관식 문교부 장관은 박 대통령의 과학기술교육 제도를 대폭 개선하라는 특별지시에 따라 과학기술교육 확충 계획을 발표했다. 민 장관은 서울대 공대와 부산대 공대에 기계설계과를, 부산대 공대에 공업교육과를 신설하며 공업고교 증설, 기업부설 기술자 양성과 기술자 자격 제도 등 과학기술 전반을 대폭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4월 21일. 이날 오전 11시 제6회 과학의 날 기념식이 서울 중앙청 회의실에서 김종필 국무총리와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 과기계와 학계, 산업계 대표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참석자들은 이날 전국민의 과화운동을 통해 전국토의 산업화, 기술화를 촉진한다는 4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정부는 또 과학의 날을 맞아 과학기술 강연과 세미나, 학술 발표회,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박 대통령이 주창한 '전국민 과학화운동'은 이후 바람 탄 불길처럼 학교와 직장, 농어촌, 공장 등지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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