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META 시대 '미래전략'] <30>4차 산업혁명과 에너지

[AI-META 시대 '미래전략'] <30>4차 산업혁명과 에너지

과거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석탄과 석유였다. 1차 산업혁명은 석탄이라는 에너지원과 증기기관 사용이 만든 변화였다. 19세기 석유가 사용되면서 자동차, 선박, 항공기가 대량 생산되고 2차 산업혁명이 활성화될 수 있었다. 1, 2차 산업혁명이 에너지원 변화와 함께 시작하고 진행된 것처럼 4차 산업혁명에서도 에너지원 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에너지 산업의 공통 키워드 '탈탄소'

4차 산업혁명만큼이나 이 시대 중요한 키워드는 '탈탄소'와 '기후변화'다. 에너지 부문의 탈탄소와 4차 산업혁명은 서로가 변화 원인이 되는 순환 관계다. 탈탄소를 위해 탄소배출이 많은 열에너지 대신 전기 사용을 확대하는 것이 지금 에너지 부문의 커다란 흐름이다. 전기 사용 확대는 4차 산업혁명 중심이 될 배터리 수요 확대를 불러왔다. 그 과정에서 탄소 감축에 기여하는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 기술이 진보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가상현실(VR) 등 미래 중심 산업도 거대한 기계를 구동하고 대량 생산을 추구하며 화석연료를 연소시켰던 과거의 모습과 차이가 있다. 탈탄소가 강조되면서 과거처럼 대량 생산을 추구하는 것보다 정교하게 수요를 파악해 자원 손실 최소화를 추구할 것이다. 이것은 과거 1, 2차 산업혁명에서 부작용으로 나타난 자원 고갈과 기후변화 등 문제에 대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AI와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다. 디지털과 AI 확대는 자원 낭비를 줄이고 에너지원 소비 효율화를 극대화할 것이다. 전력망은 AI와 통신기술이 결합해 스마트그리드를 구축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도로에서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을 통해 도로 간 주행 흐름을 조절하며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할 것이다. 이렇듯 탈탄소는 에너지 업계의 중요한 변화며 4차 산업혁명과 궤도를 같이한다. 이것을 빼고는 에너지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은 공존의 혁명

앞서 언급한 것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재생에너지처럼 연소가 동반되지 않는 저탄소 에너지 사용 비중이 확대될 것이다. 이를 통해 저탄소 사회가 구현돼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기존 에너지원 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가올 4차 산업혁명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총연출을 맡은 장이머우 감독은 개막을 앞두고 흥미로운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개막식 성화 점화는 전례 없는 파격적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점화 방식과 성화대 설치에서 저탄소·환경보호 이념 실천을 위해 가장 대담한 설계와 변혁을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개막식에서 공개된 성화 점화 방식은 거대한 성화대도 없었고, 타오르는 큰 불길도 없었다. 최종 주자가 가져온 작은 성화봉 자체가 성화대가 됐던 것이다.

올림픽 역사에 없었던 새로운 방식이었다. 대국을 강조하는 중국 기호와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모습이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인 중국의 현실과도 아이러니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파격적 장면은 에너지 사용 변화가 불러올 미래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한편으론 올림픽 성화를 실제 불길이 아니라 VR에서 타오르는 불길로 표현하고 실제 불을 쓰지 않는다면 연료 사용을 더 줄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올림픽 상징인 성화 불꽃은 유지됐다.

4차 산업혁명은 과거의 것을 많이 바꾸는 과정이지만 모든 것을 바꾸는 과정은 아니다. 올림픽 성화처럼 실물 전통이 가진 전달력은 디지털 세계에서 재현될 수 없다. 또 포옹과 악수도 아직은 메타버스 세계에서 완벽히 구현되지 않는다. 더욱이 지구상에 과거 산업혁명도 아직 구현되지 않은 지역도 많고, 여전히 안정적 전력, 깨끗한 식수, 필수 교육 등 삶에 필요한 당연한 조건도 누리지 못하며 사는 사람도 많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강조되는 사회이지만 E가 너무 강조되는 나머지 S가 소외되는 이른바 EsG가 돼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세계는 1, 2차 산업혁명과 4차 산업혁명이 병행돼야 하는 현실이다.

4차 산업혁명은 탈탄소 추구이면서 동시에 공존의 혁명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고, 기존 제조업과 데이터 기반 사업이 공존할 것이다. 3D프린팅 기술이 분산 생산과 개별 요구를 완벽히 충족시키며 성장하겠지만 기존 규격화된 생산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인류는 규모의 경제를 필요로 하고, 맞춤형 생산이 필요하지만 규격화된 코카콜라가 개인별로 맞춤화되기에는 요원하다. 또 데이터와 정보를 활용하는 시대에도 반도체, 자동차, 드론 등 제조업의 중요성은 여전히 굳건하다.

다원화된 에너지, 조화와 협력이 필수

자원 고갈과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도 에너지원 다양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런데 산업 차원에서도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시장 욕구와 적용 기술이 다양화되는 만큼 에너지원 형태도 다원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이차전지와 연료전지 기술이 필요하고, 에너지 저장능력 개선도 필요하다. 결국 4차 산업혁명 특징은 에너지원의 다원화다. 태양광, 풍력,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가 에너지 수급의 혁신을 이룰 것이다. 과거 화석연료 일변도의 에너지 수급 구조는 앞으로 더 다양한 에너지원이 경쟁하는 시대로 나아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균형 잡힌 시각과 에너지원의 팀플레이가 필요하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분명해 조화와 협력이 필수다. 재생에너지가 확대될수록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보완해줄 화석연료 역할이 필요하고, 수소가 확대될수록 수소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확보가 중요하다. 한국에서 여건상 재생에너지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다면 원자력 역시 에너지믹스에서 중요한 일부를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원자력 또한 우리나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한 만병통치약이 아님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은 부존자원이 없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요한 땅도 부족하다. 따라서 특정 에너지원에 의존할 수 없다. 다양한 에너지원을 개발해 각 에너지원 효용을 극대화하는 수준까지 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흐름에서 글로벌 대형 에너지 기업(IOC)들도 멀티플레이어가 될 것을 자처하고 있다. BP, 토탈에너지스, 쉘 등은 종합에너지사업자로 기업을 재정의하며 태양광, 풍력, 수소, 탄소포집기술(CCUS)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기존 석유 기업이 석유 사업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BP와 같은 기업은 석유 생산량은 최대 40%까지 줄이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지만 토탈에너지스와 쉘은 석유와 신재생에너지를 모두 확장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엑슨모빌, 셰브론 등 미국 기업은 여전히 석유에 집중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도 석유 소비는 견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선박과 항공기는 석유를 이동해 구동할 수밖에 없다.

아직 기초적 에너지 소비 환경을 갖추지 못한 환경에 있는 국가는 여전히 기존 에너지원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화석연료를 완벽히 대체할 에너지원이 마법처럼 나타나서 일순간에 석유와 가스를 대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재생에너지의 중요 부품인 태양광 전지판, 풍력 발전 블레이드 생산도 석유화학산업에 의존해야 한다. 또 탄소 감축을 추구할수록 기계와 도구의 경량화가 중요하고, 자동차, 로봇, 드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재 혁신이 요구된다. 이 또한 석유화학산업이 해낼 몫이다.

에너지원이 데이터와 공존하는 시대

흔히 데이터를 미래의 석유라고 한다. 데이터가 지금의 석유처럼 산업 전반에서 부가가치 창출의 핵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데이터가 석유가 된 상황에서 석유는 어떻게 될까. 앞서 서술했듯 석유는 미래에도 석유다. 연료로서나 원료로서 위상과 역할이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데이터와 결합한 석유가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에너지원을 다양화하고, CCUS 등 기초 기술을 확보하는 것도 벅찬 과제다. 그러나 탈탄소가 진행될수록 멀티 에너지원과 데이터의 결합, 그리고 그 결합체를 운영하는 능력이 미래 에너지의 안정적 수급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4차 산업혁명은 다양한 에너지원이 필요하고, 다양한 기술 역량을 요구한다. 에너지의 단기 과제는 태양광, 풍력, 원자력, 수소 등 신재생 에너지원의 기술적 능력과 사용 인프라를 확보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해질 에너지 과제는 다양한 에너지원의 협력과 조화다. 그리고 그것을 적절히 운용하고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앞서 언급한 메이저 석유기업이 종합에너지 기업을 자처하는 것은 다양한 에너지원을 종합적으로 생산하고 통제하며 소비자에게 공급하겠다는 의도가 있다.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빅데이터와 결합한 다양한 에너지의 활용 능력은 과거 산업혁명에서 석탄, 석유가 했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국제미래학회 미래에너지위원장

<필자 소개>

김동섭 사장은 울산과학기술원(UNIST) 산업공학과장, 정보바이오융합대학장을 거쳐 현재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맡고 있다. 글로벌 석유회사인 쉘(Shell)에서 약 20년간 근무하고, SK이노베이션에서 기술총괄 사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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