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빚 탕감' 논란의 본질

[ET톡]'빚 탕감' 논란의 본질

금융위원회가 추진 중인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가 '도덕적 해이' 논란에 휩싸였다. 125조원 넘는 지원을 통해 빚에 허덕이는 청년,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구제하겠다는 건데 대출금 갚으며 어렵게 살아가는 평범한 서민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분노를 샀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논란을 자처한 측면이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14일 기자간담회에서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큰 사회적 혼란이 오기 전에 20~30대 빚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후 지원책이 주식, 부동산, 가상자산 투자자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재차 기자회견을 열어 원금 탕감이 아닌 이자 일부를 감면해주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30조원 규모로 출범 예정인 새출발 기금도 잡음을 낳았다. 원금의 60%에서 최대 90%에 이르는 빚을 탕감해 준다는 소식에 성실하게 빚 갚는 사람만 바보냐는 얘기가 바로 나왔다. 일부러 돈 갚지 않고 탕감 받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탄식이 들린다. 김 위원장은 청년 빚투 지원과 새출발기금 논란 때마다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국민 불신을 오해로 치부하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화만 더 돋울 뿐이다.

정책 취지가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코로나19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2년 넘게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자금난을 해결하려 은행, 저축은행, 대부업체를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청년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시국에도 대학생은 학업에 매진하면서 취업을 준비했고, 직장인은 월세 내고 대출금 갚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 청년 중 일부가 지금 집 사지 않으면, 주식투자에 나서지 않으면 '벼락거지' 된다는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말에 쌈짓돈 투자했다가 낭패를 봤다.

부처 수장과 공무원은 국민이 제도를 잘 이해하도록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야 했다. 대통령에게 정책 보고하고, 보도자료 만들어 배포하고, 기자회견 연다고 끝이 아니다. 여러 번 설명해도 국민이 부족함을 느낀다면 정책의 의미와 기대효과, 개선 방향까지 소상히 알 수 있도록 조처해야 했다. 정부가 발표한 민생 대책의 후속 조치가 하나둘 실행을 앞두고 있다. 안심전환대출, 소상공인·자영업자 대환대출 등 구체적 일정과 대상이 잡혀가는 중이다.

김 위원장이 최근 한 보도채널에 출연해 정책을 설명하고, 대통령 업무보고에 언론과 긴밀히 소통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라도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김 위원장의 모습을 기대한다.

김민영기자 my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