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물어 보세요.” 새마을 기술봉사단이 마련한 기술상담 창구는 전국 농어촌 주민들이 보낸 편지와 전화 통화로 날마다 분주했다. 창구 직원들은 “바쁘다 바빠”를 연발했다. 주민들이 보낸 편지나 전화 상담 내용은 다양했다. 다수확 벼 재배법부터 병충해 방제법, 가축 사육, 농기계 사용법, 환경개선 방안을 비롯해 현지 기술지도와 기술 강연 요청, 기술교본 신청 등 하나같이 주민의 삶과 직결한 시급한 일이었다. 이를 잘 아는 직원들은 접수한 내용을 기술봉사단 해당 분과위로 넘겨 신속히 처리했다. 주민들에게 새마을기술봉사단은 새로운 삶을 안내하는 아름다운 동행자이자 만능 문제 해결사였다.
1974년 1월 18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가진 연두기자 회견에서 “새마을기술봉사단 활동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고도산업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전 국민은 과학화 운동을 실천해야 한다”면서 “새마을운동에 도시와 지역, 직장, 공장, 학교, 기업체 등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는 같은 해 4월 기술봉사단 조직을 확대하고 서울과 부산을 제외한 전국 9개 도에 새마을 기술봉사단 지부를 결성, 지역 특성에 맞는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새마을기술봉사단은 역점 사업으로 새마을 환경 개선, 농어촌 소득 증대, 보건·위생 개선, 과학기술 생활화, 의식계몽 등에 두고 활동을 시작했다. 기술 영농을 돕기 위해 새마을기술교본 3종을 발간, 전국 농어촌에 보급했다.
같은 해 12월 18일. 새마을 기술봉사단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이날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전국새마을지도자 대회에서 대통령 단체 표창을 받았다.
1975년 2월. 과학기술처와 과총은 새 전략을 마련했다. 새마을봉사단 활동을 마을주민과 일체화하기 위해 1마을 1과학자 기술결연을 맺고 맞춤식 영농기술 지도를 하기로 했다. 1차 결연 대상은 전국 140여개 저소득 마을이었다. 과학기술처는 이를 위해 과학자 연고지 중심으로 결연을 맺고 마을이 원하는 과제를 선정해서 영농기술 지도와 계몽활동을 전개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과학기술처와 과총은 이 같은 방침에 따라 각 도의 지원을 받아 같은 해 8월까지 전국 140개 농어촌 마을을 선정해서 과학자들과 결연했다.
과학기술처 당시 진흥국 관계자의 회고. “1마을 1과학자 결연은 주민들의 절대 호응을 받았습니다. 첫 해는 주로 벼·보리 등 양곡 증산, 소와 돼지 등 가축사육 관리, 사과와 배 등 과수 재배 등에 역점을 두고 과외하듯 기술지도를 했습니다. 봉사단과 결연하고자 하는 마을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지요.”
과학자들은 수시로 결연 마을을 방문해 영농기술과 기계 사용법을 지도했다. 1975년 한 해 봉사단 기술지도에 참여한 결연마을 주민은 6670명에 달했다. 과학자들은 결연마을에서 기술지도를 모두 437회 실시했다. 과학자들의 마을 결연 성과에 대해 과총은 △과학 영농화와 주민 소득 증대 기여 △새마을운동에 대한 계몽으로 근면·자조·협동 정신 생활화 △간이 상수도와 변소 개량, 전염병 예방 등 생활환경 개선 등에 절대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했다.
경기 화성군 태안면 마을과 자매 결연을 맺고 기술지도를 한 고광출 당시 서울대 농대 교수의 생전 증언. “과학자들은 사전에 마을별 입지 조건과 자원 상태를 파악해서 소득 증대와 마을 환경개선사업을 위한 지도 계획안을 만들어 주민들과 협의 후 진행했습니다. 기술지도를 통해 주민들의 기술 애로점을 해결하고, 이들이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를 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고광출 교수는 마을에 대한 맞춤 지도로 부락공동판매장 설치, 김장 고추단지 조성, 통일벼 보급, 시범 사과 단지 조성, 채소 촉성재배 하우스 설치 등 효과를 거두었다고 밝혔다.
새마을 기술봉사단이 농어촌 소득 증대, 마을 환경 개선 등에 눈부신 성과를 거두자 결연마을은 매년 늘었다. 1976년 2월 결연마을은 200개, 1977년 2월에는 300개로 급증했다. 과학기술처와 과총은 1마을 1과학자 성공사례를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 전국 새마을 기술지도 사례 발표회를 개최했다.
1976년 9월 3일 오전. 제1회 전국 새마을 기술지도 사례발표회가 이날 서울 강남구 과총 대강당에서 열렸다. 그 자리에는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 김윤기 과총 회장, 전국 새마을 기술봉사단 과학자와 마을지도자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최형섭 장관은 격려사를 통해 “새마을기술봉사단은 전국 농어촌마을에서 각종 과학 영농을 위한 기술지도와 강연을 통해 농어촌 생활 과학화 및 소득 증대를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다”면서 “과학자들이 전 국민 과학화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김윤기 과총 회장은 개회사에서 “전국 과학자들이 농어촌 생활의 과학화와 주민 소득 증대에 길잡이 역할을 해 달라”고 강조했다.
1박 2일 동안 열린 사례발표회에는 전국 9개 지부에서 1명씩 새마을 지도자들이 나와 그동안 추진한 지역 기술성공 사례를 발표했다. 발표회에서 '열효율화를 위한 무온돌방 설치와 그 효과'를 발표한 양태연 전북도단 지도자와 '한우 사양관리와 전염병 예방치료로 인한 육성효과'를 발표한 고해종 제주도단 지도자가 우수 발표상을 받았다. 다른 발표자들은 감사장을 받았다. 홍문화 교수가 '새마을운동과 과학기술', 송언종 내무부 새마을담당관(전 체신부 장관)이 '새마을운동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특강했다. 고광출 서울대 농대 교수는 '1과학자 1마을 결연사업의 성과와 추진방향', 전재기 경북대 농대 교수는 '새마을 기술봉사단의 효율적 운영과 육성방안', 임문순 건국대 농대 교수는 '새마을 기술봉사단 활동과 대학교수의 역할' 등 3개 과제를 발표했다.
송언종 당시 새마을담당관의 증언. “새마을운동은 생활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 정신 개선운동입니다. 이 운동의 주인은 관이 아닌 주민들입니다. 새마을 기술봉사단 활동은 마을주민들에게 기술 영농과 생활화로 우리도 더 잘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습니다.”
새마을 기술지도 사례발표회는 이후 매년 열려 9개 지역별 성공사례를 발표하고 우수지도자를 표창했다.
과학기술처와 과총은 과학영농을 위한 단기영농기술학교도 개설 운영했다. 제1회 단기영농기술학교는 1978년 2월 18일부터 7일 동안 숭실대 대전캠퍼스에서 충남도단과 숭실대 공동 주최로 개설했다. 기술학교에는 충남 부여군과 천원군 새마을지도자 100여명이 입교했다. 이들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강행군을 하며 영농기술과 정신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축산과 가축 질병, 채소와 과수, 벼 재배기술, 농기계 사용법, 토양 비료, 임업 육성 등 농촌생활에 필요한 내용으로 진행됐다.
과총은 단기 기술학교 개설 요구가 늘자 같은 해 7월 2차 단기영농학교를 개설해서 운영했다. 1980년까지 새마을 기술봉사단에는 전국 대학 교수 1127명과 교사 215명, 기타 73명이 참여했다. 새마을 기술봉사단 중앙회에는 민관식 회장과 부회장단으로 권이혁 서울대 총장, 안세희 연세대 총장, 조완규 서울대 교수, 안경모 산업기지개발공사(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표현구 서울대 교수, 강신호 동아제약 사장, 마경석 한국엔지니어클럽(현 한국엔지니어링엽합회) 명예회장, 신응균 한국운용과학회(현 한국경영과학회) 회장, 고범준 산학협동재단 사무총장, 전민제 전엔지니어링 사장 등이 활동했다.
또 농수산분과위원장은 이은웅 서울대 농대 학장, 환경분과위원장은 김정수 연세대 교수, 보건위생분과위원장은 홍문화 고려대 교수, 새마을공장분과위원장은 문병집 중앙대 교수, 자연보호분과 위원장은 임경빈 서울대 농대 교수, 종합분과 위원장은 조경철 경희대 교수가 각각 맡았다. 또 경기도단장은 박성우 서울대 농대 교수, 강원도단장은 최종열 강원대 농대 교수, 충북도단장은 연규황 충북대 교수, 충남도단장은 강신업 충남대 농대 교수, 전북도단장은 서정상 전북신문 사장, 전남도단장은 박종만 전남대 교수, 경북도단장은 홍종욱 경북대 농대 학장, 경남도단장은 박기택 부산대 교수, 제주도단장은 김승호 제주대 교수가 각각 맡았다. 새마을 기술봉사단은 당시 농어촌 주민들에게 희망의 등불이자 아름다운 동행자였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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