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세계에 유례없는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뤘다. 짧은 기간에 이 같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이 자리한다. 하지만 급격한 경제성장 뒤에는 지역 격차 심화라는 씁쓸한 그림자를 남기게 됐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소멸위험 지역은 228개 시·군·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13곳으로 집계됐다. 그리고 소멸위험 지역은 지방 도시를 넘어 수도권 외곽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격차 해소와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치분권, 지역균형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역균형과 자치분권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바로 '데이터', 여기서 더 나아가 '데이터 분권'에 있다. 데이터는 흔히 '새로운 원유'로 비유된다. 원유를 정제해서 휘발유를 만들 듯이 정제되지 않은 데이터의 가치가 더 크다.
국가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데이터는 민간보다 훨씬 많다. 데이터를 개방하면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공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 데이터가 새로운 자원이 되고 정보가 권력의 원천이 되는 추세가 점점 심화하는 상황에서 데이터 분권 실현으로 데이터의 지역적 편재가 새로운 지역 발전 격차의 원인으로 작동하는 것을 미리 방지해야 한다.
데이터 분권이란 무엇인가. 데이터 분권은 그동안 중앙정부 주도의 디지털화 과정에서 중앙부처로 몰려 있는 지역의 데이터를 지자체도 쉽게 접근해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지자체 상호 간에도 지역 데이터를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진정한 데이터 분권이 이뤄진다면 지자체는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첫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역 현안을 해결할 수 있다. 서울시는 심야 시간대 대중교통 이용의 불편함과 택시 승차 거부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빼미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올빼미 버스 노선을 정하기 위해 0시부터 오전 5시까지 30억건의 심야 시간대 휴대폰 통화량 빅데이터를 수집해서 분석했고, 실제 심야 시간대 사람들의 이동이 집중되는 곳을 중심으로 이용자 수를 정확히 예측해서 심야 시간에 대중교통이 가장 필요한 곳만 운행하도록 했다. 우리나라의 교통혼잡 비용이 한 해 30조원에 이른다고 하니 앞으로 빅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 및 처리해서 교통 이상 징후를 신속히 조치한다면 상당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기관장으로 있는 한국지역정보개발원(이하 개발원)도 최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자체 민원을 해결한 사례가 있다. 전기차 충전소의 잦은 고장으로 민원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지자체가 있었다. 개발원은 주요 고장 발생 충전소와 고장 발생 원인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충전소 위치 개선 등의 해결 방안을 제시, 민원 해결에 큰 도움을 줬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지역 현안 해결은 빅데이터 활용의 가장 기본적인 순기능으로, 모든 지자체가 데이터 분석이 가능해진다면 더욱 많은 지역 현안을 해결하게 될 것이다.
둘째 지자체 데이터 공유를 통해 상호 발전할 수 있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 가운데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충북 진천군과 경기 화성시·평택시·광주시가 96개월 이상 연속 인구증가 기록을 이어 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소멸 문제가 심각한 시대에 지속적인 인구증가로 역주행하고 있는 지자체의 비결은 무엇일까. 교통망 확충이나 투자 유치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단순 추측이 아니라 유입인구 연령, 유입인구 밀집 지역 등 데이터를 통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물론 타 지자체 사례를 자기 지역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필요한 부분을 벤치마킹하고 데이터 분석 결과를 근거로 한 새로운 정책 마련이 더 과학적이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앞으로 중앙부처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뿐만 아니라 지역 자체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타 지자체와 공유하고 분석 자료로 활용한다면 상상 이상으로 더 많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상호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자체 데이터 수집을 통한 데이터 품질 향상으로 분석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처럼 아무리 데이터가 많아도 잘 분석하고 활용해야 가치 있는 자산이 된다. 그동안 많은 양과 종류의 데이터를 생성하고 수집하는 데 집중해 왔지만 기대한 것보다 데이터 활용도와 만족도는 높지 않았다.
데이터 활용 만족도를 높일 방안은 무엇일까. 데이터의 품질 향상을 통해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석이 아니라 목표로 하는 데이터 분석 방향성에 맞는 데이터 수집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방향성을 두고 수집된 데이터는 자산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지자체도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중앙정부나 특정 기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방향성을 정해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경우 지자체는 필요한 데이터를 더 빠르게 찾아서 사용하고 결과를 신속하게 만들어 낼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비용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공공데이터와 자체 수집한 데이터 활용이 모두 가능해짐에 따라 지자체는 지역에 맞는 맞춤형 정책 수립과 지역 문제 해결을 더욱 효과적으로 처리하게 될 것이다.
데이터 분권 실현을 위해 대한민국 유일의 지역정보화 전문기관인 개발원의 역할도 말하고 싶다. 먼저, 데이터 분권을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 개발원은 데이터 분권 실현을 위한 '지방 데이터 분석종합센터'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5년 동안 개발원은 다양한 정부시스템을 개발하고 운영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정부와 지방 관련 데이터를 많이 보유하게 됐는데 이러한 데이터를 지자체 또는 민간에서 분석 및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지자체가 데이터의 활용도를 높여서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특히 주요 정책 수립 시 데이터 기반의 과학적인 분석으로 더욱 신뢰성 있는 행정을 구현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
공무원의 데이터 활용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도 확대해야 한다. 데이터 활용이 적기적소에 이뤄지려면 공무원의 역량 강화가 중요하다. 따라서 공무원들이 전문성을 발휘해서 데이터 기반의 업무 추진을 할 수 있도록 개발원은 데이터 기획부터 수집, 분석, 시각화, 활용사례 등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공무원의 데이터 활용 역량 강화로 모든 데이터가 연결된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국민과 기업, 정부, 지자체가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선택과 집중을 통해 빠른 성장을 이뤘다면 이제는 함께 데이터를 공유하고 분석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한 번 더 강조하려 한다. “진정한 자치분권의 완성은 데이터 분권에 있다.”
이재영 한국지역정보개발원장 jy128@klid.or.kr
◇이재영 한국지역정보개발원장=1988년 제32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행정자치부 정책기획관, 전남도 행정부지사 및 도지사권한대행, 행정안전부 정부청사관리본부장·정부혁신조직실장·차관 등 행정안전부와 지자체 주요 직책을 두루 경험한 중앙 및 지방행정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