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은 중국 18세기 후반 조설근의 자전적 소설이다. 흔한 돌덩이 하나가 귀족 가문의 아들 가보옥(賈寶玉)으로 환생한다.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가문도 몰락한다. 다시 돌이 되어 자신의 몸에 인간으로 산 기록을 남긴다. 돌덩이가 타자(他者)인 인간의 삶을 욕망했지만 허망한 꿈에 그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죽음을 마주하기 전에 자신의 욕망을 완성한 사람이 있을까. 프랑스 철학자 및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의 욕망을 분석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유아기를 오래 보내는 인간은 근원적으로 결핍 상태에서 태어난다. 사회적 동물이어서 혼자 살아갈 수 없고, 타자의 도움이 절실하다. 결핍 상태에 만족한다면 생존은 불가능하다. 짐승이 공격해도 피하지 않고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을 구하지 않으니 결핍을 받아들인다면 죽음이다. 유아기의 아기는 배가 고프거나 놀고 싶으면 울음을 터뜨린다. 아기의 욕구는 엄마의 보살핌으로 감춰진다. 소년이 된 후에는 언어를 배우고 필요한 것을 요구할 수 있지만 요구는 법률이나 규칙, 부모를 포함한 기성세대에 막힌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충족되지 않은 결핍으로 말미암아 욕망이 생긴다. 욕망이 충족되면 또 다른 결핍과 욕망이 생긴다.
욕망은 무엇일까. 어릴 땐 생존에 필요한 것을 찾고 자라선 부모·사회가 원하는 것을 찾는다. 부모가 의사·판사가 되길 원하면 그것이 되고 싶은 욕망을 품는다. 학교·사회에 나가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는다. 욕망은 타자로부터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과 결합해서 자신의 고유한 욕망과 더욱 멀어진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다 보니 욕망이 달성되어도 만족스럽지 않다. 타자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 아닐 뿐만 아니라 타자의 욕망 또한 또 다른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그 욕망은 죽음에 이르러야 멈춘다.
디지털시대, 인간의 욕망은 무엇인가. 아날로그 시대에 볼 수 없던 타자와의 관계를 보자. SNS 등 온라인·모바일·메타버스 등 타자를 접속할 수 있는 영토가 늘고, 접속 시간·장소 등의 제약도 없다. 아날로그 시대엔 부모, 선생님, 직장 상사·동료에 그치던 타자가 디지털시대엔 SNS '인싸'(인사이더)에서 유튜버,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종류와 규모가 증가했다. 나의 욕망을 찾지 못하고 타자의 욕망을 좇다가 주저앉고 마는 시대다. 오픈북 시험에서 점수를 받기 어렵듯이 데이터의 증가는 나와 나를 둘러싼 타자의 결핍을 키운다. 어린 시절 부모의 결핍과 욕망을 채우려 공부하고, 무언가 되기 위해 애쓴다.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과 기성세대가 내놓은 위인, 문학, 예술 등에서 알게 되는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추구한다. 타자의 욕망을 달성해도 나 자신의 욕망이 아니니 결핍이 채워지지 않는다. 타자들이 나의 욕망을 지배하고 있으니 결코 결핍을 벗어날 수 없다. 욕망의 대상이 되는 타자 또한 스스로의 욕망을 품지 못하고 또 다른 타자의 욕망으로 결핍을 경험하고 있으니 그러한 타자를 욕망하는 것 자체가 달성할 수 없는 욕망을 좇는 것이다. 타자의 규모·범위·종류가 다양해지고, 그 타자를 따르는 나의 욕망도 커지고 달라지면서 불안·공포에 휩싸인다. 기업은 욕망을 부추겨서 물건을 판다. 현실을 잊기 위해 소비하라고 한다. 게임 사이트, 메타버스를 찾으라고 한다.
어떻게 할까. 결핍과 욕망을 응시하되 때때로 접속을 끊고 무심해야 한다. 달성할 수 없는 타자의 욕망에 속지 말고 나 자신의 욕망을 찾아야 한다. 타자로부터의 인정을 받기 위한 욕망에도 마음을 비우자. 디지털시대는 욕망으로 쌓아 올린 바벨탑이다. 타자가 아닌 자기 자신의 고유한 욕망을 찾고 타자와의 건전한 관계를 정립하지 못하면 언젠간 무너진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