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85〉20세기 한때 번영한 일본경제라는 환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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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까지 경제대국으로 미국에 이어 2위이던 일본이 중국에 추월 당해 3위로 떨어졌고, 최근에는 3위 유지도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있다. 선진국 가운데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인이라면 일본경제 평균 성장률이 오랫동안 매년 1~2%였음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것이 일본인의 상식이었고, 많은 일본인이 일본 인구는 1억2000만명 이상이니까 전체 경제 규모 또한 크다는 안이한 생각을 했다.

2010년 중국에 G2 지위를 빼앗겼을 때 많은 일본인은 중국이 일본보다 인구가 10배 이상 많으니까 전체 규모로는 중국이 일본을 추월해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중국인 개개인은 가난하니 중국은 후진국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대해 많은 일본인은 중국에 대한 생각과 거의 비슷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많은 일본인은 한국이 아무리 빨리 성장해도 일본과의 격차가 줄지 않을 것이라는 우월감에 젖어 있었다. 즉 많은 일본인은 일본 이외 아시아 각국이 경제적으로 항상 일본 아래에 있고, 후진성을 면할 리 없다는 사고방식을 상식으로 하고 있었다.

19~20세기 초에 서양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선진국으로 성장한 일본을 다른 아시아 후진국이 반영구적으로 흉내 낼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일본인 특유의 근거 없는 우월감이었다.

일본인이 항상 우월감에 젖어 깔보고 있던 한국이 물가를 고려한 구매력 수준으로 볼 때 2015년의 국민 1인당 임금이 일본을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국세청 발표 자료를 보면 1995~2020년 일본인 평균임금은 연간 22만엔 정도 감소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일본 물가 지수는 1980년을 100으로 할 때 2020년에는 107이다. 즉 월급이 상승하지 않는 대신 일본 물가도 거의 상승하지 않았으니 일본인은 일정한 수준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해외로 나가면 일본인은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는다. 코로나 이전 2019년까지만 해도 해외로 나가는 일본인이 많았다. 현지 상인이 볼 때 일본인은 이미 우량 고객이 아니었다.

당시 명동거리의 여러 가게 주인은 일본 손님이 계속 물건을 보기는 하지만 결국 거의 사지 않고 가 버린다며 입을 모아 불만을 털어놓곤 했다. 이전에는 일본어로 호객하던 가게도 거의 중국어 호객으로 바뀐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현상은 한국만이 아니다. 태국 등에서도 이제는 거리에서 일본어를 거의 듣지 못한다고 한다. 유명한 동남아 거리에서도 일본어가 사라지고, 상인은 한국어나 중국어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은 나라나 기업은 부자라 해도 개개인은 가난하다고 흔히 말한다. 이제 기업은 부자인지 몰라도 나라나 개개인은 가난하다는 시대가 다가오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 대비 250% 정도라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은 이야기다. 일본은 세계 각국에 투자한 돈이 있어서 그 이자액이 만만치 않아 그 정도 국가부채는 문제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해 왔다. 일본 재무성은 아베 신조 총리 시절에 소비세를 5%부터 8%, 10%로 인상하는 데 앞장섰다. 아베 총리도 당시 아베노믹스를 희생시켜도 소비세 인상을 감행한 것이다. 그 이유는 일본의 국가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일본 재무성의 설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일본이라는 나라도 이제 재무적으로 비상 상태이기 때문이다.

2008년 리먼 쇼크를 예상하지 못한 일본기업들은 충격에 따라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환됐다. 그 교훈을 살려 현재 설비와 인재 투자를 줄이고 내부유보분을 늘리고 있다. 즉 일본인 개개인이 물건을 사지 않고 저축하듯이 일본기업이 돈을 쓰지 않고 저축하고 있다.

값싼 중국제품을 이기기 위해 일본기업은 제품가격을 되도록 올리지 않았다. 원자재가격은 오르기 때문에 일본 제품가격을 올리지 않는 대신 다른 부문에서의 희생이 필요했다. 바로 투자를 줄이는 방법이다. 많은 일본기업이 인건비를 올리지 않고 투자를 하지 않는 기형적 기업이 된 것이다.

삼성이나 현대처럼 수백억달러의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일본기업은 사라진 지 오래다. 리먼 쇼크 때의 투자 실패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일본 대기업의 내부 사정이다.

대졸 첫 임금이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던 1979년과 거의 같은 20만~25만엔인 것이 일본 대기업의 실상이다. 중국 화웨이 도쿄지점에서는 첫 임금이 66만엔 정도라고 한다. 일본인 신입사원이 중국 본사로 가면 1개월에 150만엔을 받는다고 한다. 일본 젊은이는 미국이 중국을 경계함을 알면서도 중국 대기업에 취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인재 유출이 현실화되고 있다. 소니의 기술직 첫 임금이 25만엔이라니 같은 기술직이라면 외국으로 가는 대졸이 늘 수밖에 없다.

일본에는 매력을 상실한 대기업의 미래가 바로 일본의 미래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일본은 자국이 20세기 한순간의 시기에 번영했다는 과거가 된 환상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대우교수 hosaka@sejo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