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글로벌 공급망 소용돌이 속 안전망 확보

<방기선 기재부 1차관>
<방기선 기재부 1차관>

언제부터인가 하루가 멀다 하고 리튬·니켈·코발트 등 일반 국민에게 그동안 생소했을 공급망 원재료와 생산지, 기업 수급 현황 등이 신문지면을 채우고 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봉쇄로 인한 '와이어링 하네스', 2021년에는 중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중단하며 생산이 감소한 '요소수'가 그 주인공이 됐다.

주요국 간 경쟁이 본격화하고 냉전시대의 블록 경제가 되살아나는 듯한 조짐마저 보이면서 공급망 문제는 더 이상 일시적 현상이 아닌 전세계적이고 구조적인 흐름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예로 미국은 올해 8월 52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을 시행하면서 이 법에 따른 지원을 받으려면 10년 동안 중국에 반도체 관련 투자를 할 수 없도록 명시했다. 또 '인플레이션 감축법안' 발효로 전기차 배터리의 원료와 부품 조달을 미국 또는 미국과 FTA 체결국 등으로 국한했다.

중국은 2021년 12월 희토류 관련 국영기업과 연구기관을 통합한 '중국희토그룹'을 출범시켜서 희토류에 대한 정부 통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전 세계 주요 광물에 대한 채굴 및 제련시설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공급망 실사 제도'를 도입해 EU 회원국 대상 영업 및 매출이 발생하는 기업에 공급망 전 단계에서 국제적 수준의 노동·환경 기준을 준수할 의무를 부과, 관련 공급망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2021년 기준 대외의존도가 70.1%에 이르는 우리 경제에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치솟은 원자재 가격 등으로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 모두 고공행진을 이어 가고 있으며, 기업들은 당장 현지 생산 국가를 다변화하고 설비시설을 조정하는 등 생산계획을 대폭 수정하고 있다. 과거 비용을 최소화하는 즉시 생산(just-in-time) 체제에서 만약의 사태(just-in-case)를 대비하기 위해 재고와 수입처를 여유롭게 갖춰 두는 이른바 '합리적 과잉'(rational surplus) 체제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공급망이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문제가 된 것이다.

이미 정부는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및 지난해 요소수 사태를 극복해 낸 경험을 살려 2021년 11월부터 '경제안보TF'를 운영, 국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재외공관, 무역상사, 해외지사, 협회·단체 및 기업 네트워크 등을 활용해 수입 의존도가 50% 이상인 약 4000개 품목 대상의 조기경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면서 우리 경제에 중요한 200대 '경제안보 핵심품목'을 선별해 공급망 위험 여부를 주기적으로 집중 모니터링하고 있다.

올해 2월에는 '글로벌 공급망 분석센터'를 설립해 공급망 관련 국내외 동향 분석 및 민간의 공급망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을 제정해 8월부터는 반도체 등 국가첨단전략기술에 대해 특화단지 조성, 전문인력 양성 및 기술개발 등을 패키지로 지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소재·부품·장비 산업법'을 개정해 우리 산업의 근간인 소부장 분야 공급망 안정화를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여전히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경제안보 우려가 계속되고 있으며, 중소기업을 포함해 많은 기업이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정부는 경제안보와 관련된 분야에서 민간 기업의 공급망 안정화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 제정과 '공급망 안정화 기금'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구체적으로 공급망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산업 전반에 대한 재정·세제·금융 등 종합적 지원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민간이 자발적으로 공급망 안정화 계획을 제출하면 '(가칭)공급망 안정화 선도 사업자' 등으로 인정해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공급망 안정화 기금'도 준비해서 기업의 다양한 자금 소요를 지원할 계획이며, 공급망 위험을 신속히 포착하고 위기 발생 시 활용 가능한 조치도 체계화할 계획이다. 지난달 19일 열린 경제 6단체 대상 간담회에서도 기업들은 정부가 기본법과 기금을 통해 민간 주도의 공급망 안정화 노력을 보텀업(Bottom-up) 방식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환영했다.

자료 제공=기획재정부
자료 제공=기획재정부

이미 전 세계는 자국 산업을 전략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복잡한 셈법에 들어섰다. 정부도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공급망 문제에 대해 폭넓고 신속하게 대비하기 위해 기업·학계·전문가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경제와 기업이 의지할 수 있는 중첩적인 안전망 구축에 주안점을 둘 계획이다. 새로운 공급망 시대를 개척해 나가야 하는 우리 기업의 발걸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수 있도록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찾아 나가겠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제1차관

○방기선 차관은=1965년생으로, 한성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시 34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기획예산처 산업재정3과장과 성장동력팀장,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국토해양예산과장·복지예산과장, 미국 LA총영사관 부총영사, 기획재정부 경제예산심의관·정책조정국장·차관보, 아시아개발은행(ADB) 상임이사 등 예산·정책·국제 분야 요직을 두루 거친 뒤 2022년 5월 기획재정부 제1차관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