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차를 계약하고 인도받기 위해 짧게는 6주, 길게는 1년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가솔린·디젤보다 반도체 부품이 많이 들어가는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의 인도 기간은 더 길어지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에 따른 생산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더딘 이유는 타 반도체 품목 대비 수익성이 낮은 치량용 반도체에 대해 반도체 생산 업체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연차 기준으로 차량 1대에 200여개 이상의 반도체 부품이 탑재되지만 단순 작동을 제어하는 반도체 부품이 대부분이어서 공정이 비교적 단순해 수익성이 낮다. 그 결과가 최근 이러한 차량 인도 대란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파 분야도 마찬가지다. 최근 위성산업을 필두한 6G·방위산업 분야와 같은 전파 메이저리그에 대한 정부 지원과 육성책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고, 국내 여러 학회의 관심 또한 관련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생활 깊숙이 전파 자원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다른 일들은 없는지 주위를 한번 찬찬히 둘러보자.
현재 골프 선수들이 가장 신뢰하는 골프볼 궤적 추적 장비가 트랙맨이다. 덴마크 국가대표 골프선수이던 클라우스 엘드룹 예르겐센의 레이다 기술과 골프를 접목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트랙맨은 현재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원리는 매우 단순하다. 30×30㎝ 크기의 작은 오렌지 박스에 도플러 레이더가 장착되어 있을 뿐이다. 아무도 예르겐센의 아이디어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골프 실력이 핸디캡 5이던 레이더 공학도 프레드리크 툭센의 손끝에서 트랙맨이 탄생했다. 이전 장비는 골프볼 궤적에 대한 대략적 추측값을 내놨지만 레이더를 이용한 트랙맨은 볼의 비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해서 알려주었다. 접근법이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드릴이 아닌 전자파로 땅을 뚫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가. 자연이 제공하는 에너지 가운데에서 효율이 가장 높고 양도 무궁무진한 지열 에너지를 시추하는 기존 기계적 드릴을 대체할 신기술로 마이크로파 드릴이 등장하였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폴 우스코프'(Paul Woskov) 교수팀은 고전적인 고출력 자이로트론을 이용해 기계적 진동을 줄이면서 기계적 드릴링에 비해 비용은 절반 이하, 깊이는 10배 이상 뚫을 수 있는 발진 장치를 개발하였다. 마이크로파가 마치 드릴처럼 지하에 있는 흙과 암석을 녹여서 구멍을 뚫기 때문에 훨씬 깊이 뚫을 수 있고, 주변에 미치는 영향도 적어서 지진 같은 지반 구조의 이상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한 장점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미 건설 및 토목 분야에서는 지표투과레이더(GPR)가 다리나 교량과 같은 구조물 내부의 크랙, 균일도를 파악하기 위한 비파괴 검사 장비의 하나로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활 깊숙이 전파 자원이 이용되고 있고, 누군가는 새로운 응용 분야를 발굴해서 신사업을 창출하기도 한다. 1000명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전파 융합 신산업 분야에 대한 관심과 개척자 정신의 기업이 없어 보인다. 모든 관심과 펀드가 위성을 비롯한 6G에만 몰려 있기 때문이다. 기존 반도체 회사들이 스마트폰, 노트북, 서버용 PC 등에 탑재되는 고사양 IT 반도체에만 집중한 결과가 어떠한가. 그 가운데 누군가가 증가하는 차량용 반도체에 수요를 예측하고 관심을 기울였다면 오늘 이 순간 대박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신수종 사업을 발굴하고 작지만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보석과 같은 마이너리그 전파산업을 발굴하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직 미처 발굴되지 않은, 그러나 전파 자원을 필요로 하는 많은 신수종 연구 분야가 분명 우리 주변에 숨어 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황금철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한국전자파학회 정보상임이사 khwa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