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청이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가세한다. 근무 특성상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잦지만 건강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소속 직원을 위해 비대면 진료 도입을 추진하고 법 개정에 나서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정부가 비대면 진료 합법화에 나선 가운데 소방청도 움직이면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소방청은 오는 10월부터 서울대병원과 함께 소방공무원 대상 비대면 진료 시스템 구축을 시작한다.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2025년까지 약 300여개, 2027년까지 전국 약 1100여개 안전센터 전체에 비대면 진료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심각' 단계라는 것을 전제로 '한시 허용' 상태다. 법적 지위가 불안정하다. 때문에 소방청은 시범사업에서 얻은 성과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소방공무원 비대면 진료 합법화 당위성과 근거자료를 확보하고 관련 법 개정도 시도한다는 방침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시범사업으로 계속 진행할 수도 있지만 (규모를 고려했을 때) 법 테두리 안에서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필요가 크다”면서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의료법 등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소방공무원 비대면 진료를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에 넣는 것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소방청은 비대면 진료 도입에 적극적이다. 소속 직원은 근무 특성상 교대근무가 잦아 의료기관을 방문할 시간이 적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직업병이 만연하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최근 5년간 극단적 선택을 한 소방공무원은 67명, 연평균 13.4명에 달했다. 때문에 소방청은 소방공무원이 근무 현장에서 정신과나 비침습 내과 진료를 볼 수 있는 형태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마련했다.
일선 소방서(안전센터)에 기본검사(혈압, 산소포화도, 체온, 호흡 측정), 현장진단검사(혈당, 일반혈액, 일반화학, 전해질, 프로트롬빈시간, 젖산, 심장포지자 검사), 심전도 검사 등이 가능한 장비 갖추고 서울대병원 내 공공진료센터와 연결해 전자의무기록을 전송하고 온라인으로 처방 받는 방식이다. 쌓인 데이터는 2025년까지 설립하는 국립소방병원(서울대병원 위탁 운영)으로 이관해 이어갈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쌓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코호트(특정집단 추적·관찰) 의료체계를 구축하고 소방 업무 종사자에 특화 의료서비스 지원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비대면 진료업계는 소방청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 법제화에 중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소방청 시범사업은 이상적인 비대면 진료 시스템으로 훌륭한 선행사례가 될 수 있다”이라면서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비대면 진료 필요성을 내세우면 제도화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소방청이 비대면 진료 정책에 개입하면서, 자칫 제도화 논의가 분산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 필요성을 사회가 인정하는 것”이라면서도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이미 광범위하게 비대면 진료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데 특정 직업군을 대상으로 제도화 논의가 축소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