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금융사의 알뜰폰 시장 진출과 '메기' 논란

[ET단상] 금융사의 알뜰폰 시장 진출과 '메기' 논란

알뜰폰 시장에 때아닌 '메기' 논란이 등장했다. 지난 2019년 말 알뜰폰 시장에 진입한 KB국민은행의 '리브엠'이 가입자를 약 30만명까지 늘리며 새로운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이에 자극받은 다른 대형 은행들도 잇달아 알뜰폰 시장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오면서부터다. 약 8조5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스타트업 토스는 최근 가입자 10만의 머천드코리아를 인수하며 이미 알뜰폰 시장 진입을 공식화했다. 제 2, 3의 메기 등장을 앞두고 알뜰폰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우리나라 법률은 은행이 수행하는 부수 업무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은행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통신업은 은행의 부수 업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에 KB는 알뜰폰 사업을 위해 금융위원회의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2019년 리브엠에 대한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았다. 문제는 금융위가 통신업을 2023년 4월로 예정된 임시허가 만료 전에 은행의 부수 업무로 지정할 경우 발생한다. 다른 은행들도 통신업을 자유롭게 영위하기 전에 은행의 통신업 진출과 관련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KB는 임시허가를 신청할 당시 금융과 통신을 융합해서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공언했지만 아직 별다른 혁신 서비스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 실적은 없는 반면 이동통신 유통 생태계와 알뜰폰 시장구조 파괴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다. KB가 막강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원가 이하의 할인 요금제와 사은품 등 무리한 마케팅을 전개해 가입자를 유치하면서 이통 유통 생태계와 알뜰폰 시장구조를 왜곡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KB는 방송통신위원회 자급제 단말기 유통 가이드라인 위반을 지적받았다. KB 노조 역시 대면 판매를 금지한 혁신금융서비스 재지정 승인조건 위반을 이유로 금융위원회에 KB의 알뜰폰 사업 임시허가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알뜰폰을 포함한 이통 유통 생태계에 대한 사업자 이해가 부재한 상황에서 대형 금융사들의 추가적인 알뜰폰 시장 진입이 이루어질 경우 불공정경쟁으로 인한 시장 왜곡 문제는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알뜰폰은 이용자의 가계통신비 부담 경감과 이통시장의 경쟁 활성화를 위해 도입됐다. 최근 코로나19로 가계소득이 크게 감소한 상황에서 알뜰폰 가입자가 확대된 것만 봐도 알뜰폰이 이용자의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에 기여한 바가 큼을 체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알뜰폰의 도입 취지를 고려할 때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이통시장의 경쟁 활성화 부분이다. 정부는 정책적으로 다수의 중소 사업자가 알뜰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서 중소 사업자들이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전파사용료 감면 등 다양한 지원책을 펼쳐 왔다.

그러나 KB의 사례에서 보듯 알뜰폰 시장에 대한 대형 금융사의 추가적 진출은 중소 사업자들과의 경쟁을 활성화하기보다 이들의 생존 기반 자체를 와해시킬 위험성이 크다. 알뜰폰 시장마저 소수의 금융사나 대기업이 과점하는 시장으로 전락함에 따라 발생할 이용자 피해도 우려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자본(financial capital)은 가장 중요한 자원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은행은 이러한 금융자본을 시장에 조달해서 효율적으로 공급·이용될 수 있도록 매개하고 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런데 은행이 본래 부여된 매개·조정자 역할을 하지 않고 막강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산업계에 진출하는 것은 마치 심판이 직접 선수로 뛰는 것과 같다. 금산분리는 은행이 산업자본의 사금고화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온 원칙이다. 최근 금융자본의 힘이 커지면서 금융기관이 산업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국민의 소중한 예금으로 자본을 확대하고 있는 은행이 금융업 외에 수행하는 부수적인 비금융 사업에 대해서는 자금을 제공하는 사업보다 더욱 엄격한 잣대로 사업의 공정성,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금리 인상으로 예대마진이 크게 증가하면서 은행들은 사상 최대 수준의 이익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서민,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대출채권 부실화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금융사들이 자기자본 비율을 높여서 위험에 대비하거나 취약 차주 지원과 같은 사회적 금융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보다 알뜰폰과 같은 신규 사업 진출에 먼저 눈을 돌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한 마리의 메기가 미꾸라지를 자극할 수는 있지만 포식자 메기가 늘면 미꾸라지는 잡아먹히기 마련이다. 은행들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자본을 투여하며 비금융 산업의 시장 질서를 흔들었을 때 발생할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금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깊은 고민 및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조속히 이루어지길 바란다.

고창열 제주대 교수 kocy@jeju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