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샤워 마치시고 입장하시겠습니다.”
지난 13일 오후 한양대 극자외선노광기술연구센터. 엄격한 연구 환경을 위해 방진복을 입고 에어샤워를 마쳐야 입장할 수 있다. 연구원이 조정하는 장비에서는 초록색 빛이 새어 나왔다. 800nm 파장 고에너지 적외선 레이저로 장비 내 극자외선(EUV)을 생성하기 위해 투입된다.
장비 한켠에서는 다른 연구원이 모니터로 시험 결과를 확인하고 있었다. EUV 회절광을 토대로 블랭크 마스크 패턴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다. 블랭크 마스크는 반도체 노광공정에서 회로 패턴을 새기는 핵심 부품 포토마스크의 원재료다.
다른 장비에서는 EUV 펠리클의 열적 내구성 평가를 진행했다. 펠리클은 포토마스크를 보호하는 얇은 박막이다. 5나노 이하 첨단공정 수율을 높이기 위해선 펠리클이 꼭 필요하다. 현재 펠리클은 투과율과 내구성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극자외선노광기술연구센터에서는 블랭크 마스크, 펠리클 등 반도체 첨단공정 필수 부품 국산화 연구가 한창이다.
비슷한 시각 원자수준공정및플라즈마연구센터. 식각장비에 달린 렌즈에 눈을 가져갔다. 이번엔 자주색 빛이 보였다. 플라즈마를 통해 웨이퍼를 식각하는 모습이다.
정진욱 센터장(전기공학과 교수)은 “나노 단위 반도체 공정에서는 원자 하나만 잘못돼도 결과가 달라진다”면서 “3나노 첨단공정에서 원자층을 식각·증착하기 위해선 플라즈마 식각 기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반도체 패키징 신뢰성 검사, 반도체 물성 등 차세대 반도체 기술 확보를 위한 다양한 연구가 한양대스마트반도체연구원(ISS)에서 이뤄지고 있다.
ISS는 학과 간 장벽을 극복한 반도체 융합 연구를 위해 지난달 말 출범한 총장 직속 연구조직이다. 극자외선노광기술연구센터·차세대반도체물성및소자연구센터·첨단반도체패키징연구센터·원자수준공정및플라즈마연구센터 등 4개 연구센터를 두고 40여명의 교수가 ISS에 참여했다.
국내 EUV 연구 생태계 선구자 역할을 해온 안진호 극자외선노광기술연구센터장(신소재공학과 교수)이 ISS 원장을 맡았다. 안 원장은 ISS 역할로 '융합'과 '플랫폼'을 들었다.
반도체는 산화·노광·식각·금속 배선 등 8대 공정을 통해 생산된다. 공정이 다양하다보니 신소재, 화학공학, 원자력, 물리 등 반도체와 관련된 학문 분야 역시 폭이 넓다. ISS는 학과 간 장벽을 허물며 차세대 반도체 연구협력 기회를 마련한다.
정문석 차세대반도체물성및소자연구센터장(물리학과 교수)은 “현재 반도체 업계에서는 검사 영역에 물성 분석이 필요해 물리학 전공자 수요가 높다”며 “물리부터 리소그래피, 식각, 패키징 등 반도체 관련 모든 학문을 융합 연구할 수 있는 것이 ISS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올해 말 완공돼 내년 초 본격 가동되는 반도체 팹 시설은 ISS 학문 간 융·복합 연구의 장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팹에는 클린룸을 갖추고 주요 반도체 공정 설비를 구축한다. 패키징·신뢰성 평가센터도 내년 초 들어선다. 한양대는 차세대 반도체 연구시설 조성에 7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국책과제 중심 연구 환경에서 사학으로서는 이례적인 투자 규모다.
ISS는 지속가능한 반도체 산학협력 생태계 조성을 연구 목표로 삼았다. 반도체 업계 수요기술을 ISS가 선행적으로 연구하고 그 성과를 기업과 협력하는 방식이다. ISS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플랫폼 역할을 맡는다.
지난달 첨단반도체패키징연구센터가 덕산하이메탈, 미국 메릴랜드대와 맺은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소재 공동 개발 업무협약(MOU)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패키징 소형화 요구에 따라 칩과 기판을 연결해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솔더볼 역시 미세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마이크로솔더볼은 일정 크기 이하에서는 같은 소재라도 배합 비율에 따라 물성이 달라지는 어려움이 있다. 연구센터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구축한다. 소재 구성에 따른 전기적 특성 결과를 제공하며 차세대 패키징 소재 개발 속도를 앞당긴다. 반도체 패키징 소재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공동 운영한다.
패키징연구센터는 패키징 신뢰성·비파괴검사, 패키징 구조해석·전자 설계 기술 등에서도 융합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
김학성 첨단반도체패키징연구센터장(기계공학부 교수)은 “패키징을 가장 마지막 공정으로만 여겼던 기존과 달리 웨이퍼 설계 단계에서 패키징 설계를 고려해야 할 정도로 중요도가 높아졌다”면서 “변화된 반도체 산업에 부합하는 첨단 패키징 기술과 인재양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 원장 역시 이전부터 극자외선노광기술협의체(EUV-IUCC)를 운영하며 국내외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비롯해 29개 기업과 협력 네트워크를 조성했다. 기업과 대학이 EUV 소재와 부품을 상호 검증하며 제품을 고도화하고 국내에 EUV 산학 생태계를 조성한 결과를 낳았다. 그간의 성과를 ISS 전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안 원장은 “차세대 반도체 연구가 산업과 연계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ISS는 기업과 협력한 연구개발과 인재양성을 통해 국내 반도체 산업 성장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한양대스마트반도체연구원 개요
송윤섭기자 sy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