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벤처업계의 세 번째 겨울

[ET단상] 벤처업계의 세 번째 겨울

벤처업계에 겨울이 찾아왔다. 벤처캐피털을 포함한 많은 투자자가 지갑을 닫기 시작했고, 벤처기업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려갈 수도 있음을 확인시키는 겨울이 돌아왔다. 겨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20년 동안 경험하는 세 번째 겨울이다.

투자를 받기 위해 벤처기업이 작성하는 회사소개서에서는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라는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업 배경과 서비스·제품 개발 이유를 설명하는 표현이다. 벤처기업 혁신을 위한 노력으로 우리는 사회·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개인 삶에서도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 반도체 강국 실현에 힘을 싣는 다양한 팹리스(Fabless) 벤처기업의 연구개발부터 신선식품 새벽 배송과 가고 싶은 전국 레스토랑과 숙박시설에 대한 예약, 각종 질병 정복을 위한 신약 개발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치매와 우울증 등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 개발·서비스까지 벤처기업은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통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벤처기업은 또 일자리 창출과 국가 경제 성장에 이바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1년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벤처기업 총 종사자 수는 약 82만명으로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의 전체 고용(약 70만명)보다 12만명 더 많았다. 2019년 코로나19 여파로 대기업 매출액이 1.1% 감소할 때 벤처기업은 7%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어느새 벤처기업이 대기업보다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도 놀랍지만 고용에서 파생되는 경제적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이 역시 이전 겨울과는 다른 겨울의 모습이다.

벤처 업계가 3년 가까운 코로나19 기간에 오히려 양적·질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창업에 뛰어든 모험심 넘치는 젊은 창업가가 늘었고, 그들의 문제의식에 동참하고 머리를 맞대며 도움을 줄 수 있는 투자자도 증가했다. 그리고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창업가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할 수 있는 재원도 크게 불어났다. 이처럼 벤처 업계가 빠르고 크게 성장했기 때문에 이번 겨울은 더 춥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추위 때문에 움츠린다고 해서 추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추위에 움츠리기보다 이번 겨울은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서 '우리를 위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집중하면 어떨까. 다시 말해 우리를 혁신해야 하는 시간으로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체온을 높여 보자.

물론 겨울나기도 어려운데 스스로를 혁신 대상으로 삼고 사업 전반을 들여다보는 것은 더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혁신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동안의 사업 진행에 따른 성과와 전략을 돌아본 후 냉철하게 평가 분석을 하다 보면 분명 우리가 놓쳤거나 간과하고 지나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선과 동시에 우리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이와 더불어 불필요한 비용과 자원 지출을 줄이며 팀워크를 강화하면서 우리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이번 겨울이 벤처기업 노력으로만 해결될 수는 없다. 대립과 전쟁이 촉발한 세계 경제질서의 변화, 세계적 경기 침체와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영향력 등 벤처기업 외부에 넘어야 할 산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역사에서 보듯이 시간문제일 뿐 봄은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오며, 겨우내 착실히 몸을 만든 벤처기업에 봄은 더 따뜻하게 느껴질 것이다.

벤처기업에 대한 육성과 투자를 담당하고 있는 정부, 그리고 벤처캐피털을 포함한 많은 투자자에게도 부탁하고 싶다. 겨울을 견디고 지나가야 하는 많은 벤처기업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통해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업의 동반자로부터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을 제공했으면 좋겠다. 봄은 겨울이 지나가야 온다. 이번 겨울은 너무 춥지 않게 가능한 한 빨리 지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유승운 스톤브릿지벤처스 대표 sw@stonebridg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