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경제난으로 예금 출금을 제한한 중동국가 레바논에서 한 여성이 장난감 총을 들고 은행에 난입해 돈을 찾아가는 일이 벌어졌다고 14일(현지시간) 알자지라 등이 보도했다.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는 살리 하피즈. 그는 이날 오전 11시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있는 블롬은행 지점에 장난감 총을 들고 난입했다.
그는 총을 꺼내 들고 책상 위로 올라가 “병원에서 죽어가는 언니의 계좌에서 돈을 찾으러 왔다”며 “나는 누군가를 죽이거나 쏘려고 온게 아니다. 그저 나의 권리를 주장하러 왔다”고 소리쳤다.
그와 함께 은행에 침입한 예금자 단체 ‘예금자 외침’ 멤버들은 지점 곳곳에 휘발유를 뿌리며 예금을 인출하지 않으면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했고, 결국 하피즈는 자신의 계좌에 있는 2만 달러 중 1만 3000달러를 받아냈다.
이들의 ‘과격한’ 예금 인출 과정은 페이스북으로 생중계됐다. 이들은 현지 방송과 인터뷰에서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강도 행세까지 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하피즈는 "은행 지점장에게 가족이 맡긴 2만 달러를 달라고 애원했다. 언니가 암에 걸려 병원에서 죽어가기 때문에 5만 달러의 병원비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며 "결국 잃을 것이 없는 상황에 몰렸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은행에 들어갈 때 가져간 권총은 조카의 장난감이었다고 주장했다.
레바논의 경제난은 2019년부터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고, 그 결과 국민 80%가 사실상 빈곤층으로 떨어졌다. 코로나19 펜데믹(대유행)과 2020년 베이루트 항구 대폭발, 우크라이나 전쟁 등 악재가 연이어 덮친 것이다.
현제 화폐인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는 90% 이상 폭락했다. 세계은행(WB)은 이런 레바논의 경제 위기를 19세기 중반 이후 세계 역사에서 가장 심각하고 장기적인 불황으로 진단했다.
이런 경제 위기 속 레바논 은행들은 '뱅크런'(은행의 예금 지급 불능을 우려한 고객들의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을 막기 위해 대부분 고객의 예금 인출을 제한했다.
국민 대다수가 은행에 돈이 있음에도 찾을 수도 쓸 수도 없게 된 것이다. 매달 인출할 수 있는 돈은 최대 400달러뿐이다. 또, 700달러를 인출하려고 하면 200달러만 주는 등 사실상 자산가치를 낮춰 지급하기도 했다.
이에 돈을 되찾기 위해 은행에 침입하는 일이 레바논 곳곳에서 일어났다.
지난달 한 남성은 아버지의 치료비 명목으로 20만 달러를 찾으려 했으나 은행 측이 거절하자 직원들과 고객들을 인질극을 벌이기도 했다.
또, 같은 날 베이루트 북동부에 있는 소도시 엘리에서 무장한 남성이 예치된 돈의 일부를 받은 뒤 보안 당국에 자수하기도 했다. 당시 은행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그를 영웅 취급하며 환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격한 예금 인출로 주목을 받은 하피즈 역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영웅으로 부상했으며, 그 역시 사람들에게 행동에 나서라고 독려했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