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은 유효한가? 기업가의 혁신은 자본주의 경제를 기르는 힘이라고 했다. 증기기관을 만드는 것은 발명가의 일이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증기기관을 설치한 열차를 만들고 역과 역을 연결해서 승객과 화물을 옮겨 시장을 만드는 것은 기업가의 혁신이다.
반도체를 보자. 원거리통신을 위해 일정한 거리마다 전기신호를 증폭하는 것은 진공관이다. 부피, 발열과 전력 소모가 커서 오래 쓸 수 없었다. 진공관을 대체한 것이 반도체다. 1945년 미국 통신사 벨의 윌리엄 쇼클리 등은 얇은 반도체 조각에 수직으로 자기장을 걸면 전기신호가 증폭된다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했다. 전자가 반도체 표면에서 움직이지 않아 전기신호 증폭에 실패했다. 그러다가 도체와 반도체의 접점이 전해액에 접촉한 상태에서 전기신호 증폭이 가능한 것을 발견했다. 반도체를 이용한 트랜지스터가 세상에 나오는 혁신의 순간이다.
음악 감상은 전축, 카세트 플레이어를 쓰다가 스마트폰 스트리밍을 이용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LP판 및 카세트테이프를 만드는 공정과 그것을 통해 음악을 듣는 문화를 파괴했다. 스마트폰과 스트리밍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음악을 듣는 문화를 창조했다. 혁신이다. 그러나 고객이 음악을 듣는다는 관념은 파괴되지 않았다. 고객이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도 참여하면 어떨까. 소비자에 불과하던 고객이 참여해서 다양한 악기와 음악을 만들어 즐길 수 있다면 엄청난 혁신이 아닐까.
슘페터의 혁신은 영원할까. 쉽지 않다. 기업혁신으로 기술이 노동을 대체하면서 일자리가 줄고 있다. 일자리를 줄이는 기술 혁신은 정치권이 싫어하고, 법령과 규제에 막혀 추진이 어렵다. 창조적 파괴가 어려운 상황에서 시장을 잠깐 변화시킬 순 있어도 새 시장을 만들긴 어렵다.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미래 기술을 미리 개발해 왔기 때문에 더 앞선 기술혁신이 쉽지 않은 것도 이유다. 산업화시대에는 지도자의 말 한마디로 도로가 건설되고 공업이 육성되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기득권을 보호하는 법·제도와 관행을 파괴하기 쉽지 않다. 블록체인은 중앙통제시스템을 걷어낼 수 없는 문제, 암호화폐는 투기를 야기하고 기존 통화체계와 융화하기 어려운 문제, 모빌리티는 기존 택시산업 보호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다. 혁신을 외치지만 성과는 없어 혁신 피로감만 높아진다.
슘페터 혁신의 대안은 없을까. 다양한 경제 주체에 의한 '생활혁신'이다. 민간 교육 수준 및 역량 증가는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벤처, 스타트업, 개인 중심으로 혁신 주체를 넓히고 있다. 기술을 몰라도 창작할 수 있는 디지털 저작도구의 공급, 소프트웨어·하드웨어·데이터 스토리지를 빌려 쓰는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정보를 다양하고 정확하게 읽고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 생활혁신을 뒷받침하고 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출발서해 온라인, 모바일, 메타버스로 인간의 영토가 확장돼 다양한 시장을 만들고 있다. 그 위에서 또 다른 자본과 노동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생활혁신의 결과는 발명, 저작, 디자인, 상품, 서비스 등 다양하다.
생활혁신을 위해선 '반복과 차이'가 중요하다. 우리는 어제와 같은 삶을 수없이 반복하지만 그 반복은 항상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에 의미가 있다면 혁신의 단초가 된다. 3M의 포스트잇은 접착력이 낮은 불량에서 의미 있는 '차이'로 재발견된 경우다. 화가 잭슨 폴록의 그림은 수많은 붓질과 물감을 버리는 반복 속에서 감동을 주는 '차이'를 발견할 때 작품으로 탄생했다. 일상 속 반복과 차이에서 혁신을 찾자. 우리 모두를 혁신가로 만드는 일상, 그것이 생활혁신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