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현의 테크와 사람]<12>AI시대, 작가는 누구인가

[김장현의 테크와 사람]<12>AI시대, 작가는 누구인가

최근 단어나 어구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그림을 그려 주는 AI가 화제다. '파란 하늘에 떠 가는 한 점의 구름'이라고 입력하면 필자와 같은 '그림치'도 AI의 손을 빌려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에 빠진 것 같은 중년 남성의 눈빛'을 표현하는 그림도 AI가 그려 줄까? 물론이다. 사물뿐만 아니라 사물의 속성을 매우 모호하고 감성 짙은 단어로 표현해도 AI는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이용자는 다양한 속성 값을 조금씩 바꿔 가며 AI가 그려 준 다양한 버전의 그림 가운데 어떤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고르기만 하면 된다. 직접 그림을 그려 내는 '작가'에서 AI라는 보조요원이 그려 주는 다양한 그림에 코멘트를 하며 수정해 가다가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내는 '선별자'로 역할이 바뀌는 것이다. 인간의 역할 변화, 이것이 바로 AI시대의 예술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변동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채색기법이나 예술적 기법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 그러한 협업에서 더욱 유리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뛰어난 언어적 감수성이 있는 사람도 AI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언어적 표현을 시각적 표현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예술작업으로의 진입이 용이해지면서 우리는 AI와의 협업을 부끄러워하기보다 오히려 협업을 잘할수록 사람들의 주목과 시선을 받을 수 있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언어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대체로 갖는 역량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이해, 즉 인문학적 기초가 핵심 역량이 될 것이다. 그리스신화와 우리의 구전동화에 익숙한 사람이 구사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적 표현은 바로 AI와의 협업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독서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우리의 초·중·고등학교 교육이 맞닥뜨리는 가장 큰 딜레마는 아이들에게 책 읽는 시간을 부여하기보다 오히려 그러한 시간을 빼앗고 있다는 데 있다. 앞으로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예 독서나 영화감상 같은 과목으로 꽉 채워 주는 것은 어떨까. 가까운 박물관이나 전시관에 들르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겠다. 인문학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푸념을 하는 사람들에게 깊어 가는 AI시대는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전망해 보게 된다.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더 있다. 바로 저작권이다. 지금 공개돼 있는 AI 작가의 도움을 받은 작품에서 명령을 입력한 이용자의 지분은 얼마인가. 인간이 언어적 명령의 주체이고 AI는 붓이나 물감과 같은 하나의 도구이기 때문에 모든 크레디트는 인간에게 부여되어야 할 것인가? AI라는 도구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해서 그 패턴을 인식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됐고, 그러한 조합의 역량은 인간이 갖는 예술적 창의성과 과연 얼마나 다른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인가. AI가 만약 인간의 자의식까지 모방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면 인간을 상대로 자신이 더 많은 저작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게 될 날이 오지는 않을까? 예술가가 조수의 도움을 받아 작업했다 하더라도 저작권이 예술가에게 있다는 판결에 비추어 볼 때 AI에 그 주체성을 인정하거나 저작권을 주어야 할 시기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면 될까?

이러한 열린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는 미리 여러 가지 답에 대비할 수 있는 혁신 교육을 선사해야 한다. 그것이 이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야 할 후속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alohakim@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