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350통.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살인사건 피해자가 2019년부터 일방으로 연락받은 숫자다. 여기엔 '만나달라'는 메시지, 전화 등은 물론 지난해 11월부터 보낸 '합의해 달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다. 지난해 10월 피해자는 경찰에 전주환을 불법촬영과 협박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신변 보호도 요청했다. 3년 동안 350통이라는 끈질긴 괴롭힘 속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견뎌야만 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어떠한 집단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국가는 피해자를 지키지 못했다. 피해자가 속한 서울교통공사는 직위 해제된 전주환에게 내부망 접속 권한을 그대로 유지했다. 결국 그는 내부망을 통해 피해자의 근무지를 파악하고 범행을 저질렀다. 이후에도 서울교통공사는 피해자의 이름을 공개하며 2차 가해까지 저질렀다.
경찰은 피해자의 고소 이후 '위험성 판단 체크 리스트'를 작성했지만 '위험성 없음 또는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 재평가도 거치지 않았다. 특히 전주환이 택시 운전자 폭행, 음란물 유포 혐의 등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법원은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가운데 단 하나의 조치라도 제대로 실행했다면 피해를 막았을 수도 있었다.
정치권은 이슈가 커지자 부랴부랴 사후 대응에 나섰다. 여야와 정부는 앞다퉈 스토킹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정치권이 내놓은 대책으로는 △단순 스토킹 범죄에 대한 반의사 불벌죄 조항 삭제 △처벌 대상에 온라인 스토킹 추가 △잠정조치(접근금지·전기통신이용 접근금지 등)에 위치추적 도입 △긴급응급조치 위반 시 형사처벌(기존은 과태료) △전자장치 부착 명령 대상에 스토킹 범죄 추가 등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안일한 인식이 드러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상훈 서울시의원은 “좋아하는데 받아주지 않으니 폭력적으로 대응했다”고 발언, 물의를 빚기도 했다.
신당역 사건 발생 이후에도 스토킹 관련 범죄가 꾸준히 발생했다. 지난 27일 인천지법 형사14부는 살인미수, 주거침입, 동물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사건 당일 A씨는 연인 관계에 있던 B씨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은 뒤 2∼3분 간격으로 10시간 동안 계속 전화했고, 결국 한 공동주택 건물 계단에서 흉기로 B씨를 여러 차례 찔렀다.
정치권은 속도를 낸다고 한다. 속도를 더 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은 언제 큰 범죄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스토킹 범죄 행각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고 있다. 심지어 주변에서조차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가 목숨을 잃어야만 속도를 낼 것인지 묻고 싶다. 피해자가 발생해야만 움직이는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
최기창기자 mobyd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