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산업이 '핫'하다. 최근 관련 산업 종사자와 대화할 기회가 많았다.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지만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인력이었다. 인력이 중요하고, 그 가운데에서도 소프트웨어(SW) 인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수급이 쉽지 않다고 했다. 정보기술(IT) 산업도 아니고 우주 산업에서 SW 인력이라니 선뜻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치다. '우주 산업' 하면 연상되는 커다란 화염과 굉음 뒤에는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정밀한 계산 및 제어가 있다. 여기에는 SW의 힘이 필수다. 비단 우주 산업뿐만 그렇겠는가. 이제 전통 제조업부터 첨단 신산업, 금융 서비스까지 모든 산업이 SW 및 IT와 융합하는 시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일상화가 가속화하면서 이 같은 경향은 더욱 심화됐다. 과거 제조업 중심 사회에서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되는 '뿌리 산업'이 소재, 부품, 금형 등을 일컫는 말이었다면 새 시대의 '뿌리 산업'은 SW가 아닐까?
그래서 앞으로 산업 이야기를 하려면 가장 먼저 SW, 그 가운데에서도 SW 인력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2021년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는 향후 5년 동안 우리나라에 신규 SW 인력 35만3000명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같은 기간 SW 인력 공급 규모는 32만4000명으로 예상된다. 산술적으로 연평균 6000명의 인력 부족이 발생한다. 코로나19 영향과 기술·산업의 발전을 반영하지 않은 예측치임을 감안한다면 SW 인력의 '품귀 현상'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공산이 높다.
최근 SW 인력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IT·SW 산업 외 타 산업에서 관련 인력의 부족 현상이다. 통계가 이를 극명히 보여 준다. SPRi 조사에 따르면 SW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SW 전문 인력은 2017년 22만6000명에서 2019년 27만명으로 연평균 9.2% 늘었다. 같은 기간 SW 산업이 아닌 타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SW 전문 인력 수는 18만9000명에서 27만명으로 연평균 19.5% 늘었다. 증가세가 두 배 이상 가파르다. 인력 수요가 그만큼 폭증한다는 얘기다.
무엇이 시급한 과제인지 자명하다. 제조업을 비롯한 전통 산업부터 우주, 첨단 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에 걸쳐 폭증하는 SW 인력 수요를 감당하는 것이다. 그래야 성공적인 디지털전환도 신성장 동력 창출도 가능하다. 앞으로 우리 경제의 명운은 여기에 필요한 질 좋은 SW 인력을 얼마나 잘 양성해서 적기에 공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급증하는 SW 인력 수요의 특성을 명확히 하자. 수요가 폭증하는 곳이 더 이상 SW산업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인력은 단순히 SW를 전문적으로 다룰 줄 아는 인력이 아니다. 확장성과 응용력을 갖춘 SW 인력이다. 다양한 분야의 산업 현장, 다종다양한 기업에서 SW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SW 인력 양성 체계를 바꿔야 한다.
전문 인력은 기업 또는 대학이 독자적으로 양성할 수 없다. 대학과 기업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통해 길러야 한다. 여러 분야에서 다종다양한 산업을 영위하는 모든 기업이 SW 인력을 전문적으로 양성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학을 비롯한 SW 전문인력 양성기관은 일반적인 SW 역량은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응용력과 확장성, 즉 SW 전문성을 활용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가르치기에는 역부족이다. 기업과 대학이 함께 적재적소의 SW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SW를 응용해야 하는 산업과 분야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기업과 대학을 연결하기만 하면 될 거라는 근시안적 처방은 금물이다. 산업 분야마다 원하는 SW 인재상과 숙련도는 다 다르다. 교육기관도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 이를 제대로 매칭해야 한다. 이런 고려도 없이 범용 SW 인력만 우후죽순 양성할 경우 기업은 시장에 쏟아지는 인력은 많은데 쓸 만한 인재는 없다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청년들은 취업난에 시달릴 게 뻔하다.
그래서 새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SW 인력양성 플랫폼으로 '지역'을 제안한다. 지역에는 나름의 특색을 갖춘 기업과 산업 생태계가 있다. 무엇보다 무한한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 앞길이 창창한 청년들이 있다. 인력 양성의 요람인 특색 있는 대학과 교육기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을 잘 활용해서 지역 기업이 원하는 SW 인력을 지역의 교육기관이 지역 산업 특성에 맞게 양성해야 한다. 기업, 대학, 지역사회가 상시 소통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플랫폼은 다종 다양한 기업의 수요와 인력 양성의 방향을 매칭할 수 있는 최적의 플랫폼이다.
'지역 기반 SW 인력 양성 플랫폼'은 기업·대학·지역사회가 함께 사는 길이기도 하다. 기업은 맞춤형 인재를 공급받을 수 있고, 대학은 실용 학문의 장이자 지역 커뮤니티의 핵심 거점으로 거듭난다. 청년은 더 이상 먹고살기 위해 가족과 고향을 등지지 않아도 된다. 지역 산업은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도 노쇠하지 않고, 오히려 탄탄한 맞춤형 SW 역량을 기반으로 꽃을 피운다. 국가 차원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면서 지방 소멸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세계 경제가 코로나 팬데믹에 이은 연쇄 위기를 겪으면서 기나긴 겨울을 지나고 있다. 지금부터 이 겨울의 끝을 준비해야 한다. 봄은 준비된 자에게는 부활과 풍요의 계절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보릿고개 계절일 뿐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준비 역량은 위기의 먹구름이 걷히자마자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막연히 '포스트 코로나' '경제 위기 극복'을 외치기 전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를 되물어 봐야 한다. 새 시대의 '뿌리 산업'인 SW 생태계를 어떻게 가꾸느냐가 핵심이다. 국가와 지역, 기업과 대학이 함께 가꾸는 인력 양성 플랫폼부터 시작하자.
◇조승래 의원은…
노무현 참여정부 행정관·비서관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재선 국회의원이다. 초선 때부터 정책 역량과 조정 능력을 인정받아 이례적으로 국회 후반기 교육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21대 국회에서는 전·후반기 연달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위원회 간사로 활동하고 있다. 민주당 원내선임부대표와 제4정책조정위원장을 지냈다. 과학기술·ICT·게임·문화콘텐츠 같은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 인재 양성에 관심이 많다. 2020년 국회 문화콘텐츠 포럼을 만들어서 모임을 꾸려 가고 있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구글갑질방지법 입법을 주도하며 '빅테크 저승사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yuseong0413@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