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물리학에 의하면 거시세계에선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는 속도와 이동한 거리를 알면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미시세계에선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전자로부터 직접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빛이나 다른 입자를 전자에 충돌시켜서 알아내려 하면 충돌하는 순간에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이 바뀌기 때문에 알 수 없게 된다(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1927년 클린턴 데이비슨과 레스터 저머는 이중슬릿 실험을 했다. 2개의 미세한 슬릿(구멍)을 향하여 1개의 전자를 쏘면 전자는 1개임에도 파동처럼 2개의 슬릿을 모두 통과해서 뒤에 있는 벽면에 간섭무늬를 보인다. 그런데 누군가 이를 관측하면 전자가 입자처럼 1개의 슬릿만을 통과, 간섭무늬를 보이지 않는다.
현대 정부 정책이 당면한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산업화 시대에는 경제개발계획을 실행하면 성공했고, 엄청난 경제성장률을 만들었다. 지금은 왜 안 될까. 미시세계에서 전자의 위치, 운동량을 측정하거나 그 성격을 알기 어려운 것처럼 현대는 민간(또는 시장)을 측정하기 어렵다. 정책이 타깃을 삼은 시장은 정책을 시행할 즈음엔 다른 곳에 가 있다. 정책 목표가 아닌 다른 시장에 부작용을 주기도 한다. 엇박자가 난다. 시장이 세계와 연동되면서 더욱 정책 효과를 보기 어렵다. 민간의 역량이 높은 것도 정부 정책의 수립, 시행과 그 효력을 보기 어렵게 하는 원인이다. 정부에 정책이 있다면 민간에는 대책이 있다. 민간은 정부의 정책이 자신에게 불리하면 피해 나갈 방안을 미리 강구한다. 반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부와 국회를 설득해서 법령과 정책을 만들기도 한다.
정부가 국민의 권리의무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려면 법령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법령은 국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통과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 정치적 이해관계라도 있으면 여야 정쟁의 대상이 된다. 통과가 안 된다. 법령이 없다면 정부 정책도 수립과 시행이 어렵다.
정부기관 사이에 있는 칸막이도 문제다. A부처의 정책이 B부처의 정책과 반대되거나 그 효과를 떨어뜨린다. 협의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정책이 어떠냐에 따라 특정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달라진다. 교육부의 교육정책이 국토교통부의 부동산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칸막이를 없애거나 컨트롤 타워가 필요한 이유다.
투명·공개 행정의 영향도 있다. 국민에게 중대한 이해관계를 미치는 정책은 기획이나 수립, 이해관계자나 전문가 등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외부에 알려진다. 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키거나 효력을 없앤다.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민간의 역량이 높은 현대는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 암호화폐 등 아이디어가 민간에서 나온다. 정부가 새로운 것을 처음부터 만들고, 주도하기가 쉽지 않다. 민간이 주도하게 해야 한다. 정부는 민간의 창의를 막는 장애를 제거하고 민간의 분쟁을 조정하는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부의 역량만으로 성과를 내기 어려운 만큼 대학, 민간 전문 단체, 시민단체 등 제3자(third party)를 활용하는 방안을 높여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역량을 국가 정책 발전을 위해 내놓게 해야 한다. 물론 인센티브도 있어야 한다. 블록체인이 관심을 끄는 것도 블록체인 참여자의 기여도에 따라 보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지배력이 있는 기업·단체를 견제할 수 있는 다양한 민간 단체를 육성해야 한다. 그들의 혁신을 통해 시장을 다원화하고, 선순환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발전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부가 과거의 성공 경험을 잊지 못하고 실패에서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면 국가의 미래는 없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