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가전시장, 한파가 온다

연말 가전 성수기를 앞두고 뜨거워야 할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겨울 가전과 월드컵 특수, 연말 대형 이벤트 등 수요를 견인할 모든 요소가 있지만 차갑게 식어버린 수요가 되살아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체기에 진입한 이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3분기 당시 삼성과 LG전자 실적은 '사상 최대' '역대 신기록' 등 화려한 수식어로도 부족할 판이었다. 역대급 실적을 뒷받침한 것은 가전, TV였다.

서울 가전 유통점에 고객이 TV를 살펴보고 있다.(자료: 전자신문 DB)
서울 가전 유통점에 고객이 TV를 살펴보고 있다.(자료: 전자신문 DB)

1년이 지난 올해 3분기 실적은 '어닝 쇼크' '부진 지속' 등 정반대 모습이다. 가전과 TV가 실적 부진 원인으로 지목됐다.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고, 파격적인 프로모션에도 수요는 요지부동이다. 시장조사업체 GfK에 따르면 상반기 국내 가전 시장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6% 하락하며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섰다. 냉장고, 세탁기, TV, 에어컨 등 대형가전의 부진이 컸다.

하반기 월드컵과 대형 유통 프로모션, 겨울 가전 성수기 등으로 수요가 어느 정도 회복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미국을 비롯해 각국의 물가가 오르면서 기준 금리까지 덩달아 오름세다. 특히 미국의 9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6.6% 올랐다. 이는 40년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9월 미국 전자제품 소매 판매는 6.8% 하락, 9개월 연속 내림세를 기록했다. 시장 성장 동력이었던 계절·기후 요인, 스포츠 이벤트 등은 엔데믹과 강력한 인플레이션 등으로 수요 견인을 기대하기 어렵다.

단순히 경기 불황에 따른 회복 전략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장기 플랜의 필요성이 커졌다. 핵심은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맞춤형 제품·서비스다. 팬데믹이 가전 의존도를 높인 만큼 고객도 더 지능화했다. 공급자가 제공한 제품을 수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맞춤형 기능과 차별화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수요자로 진화한 것이다.

요구사항을 얼마나 빠르고 세밀하게 충족하느냐가 생존 방법으로 부상했다. TV,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개인 맞춤형 기능을 강화했다. 기존 계절 가전도 특정 시기가 아닌 사계절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기능으로 확대하고 있다. 다양한 조리기기를 하나로 합친 멀티쿠커, 집안 어디에서나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이동형 스크린, 캠핑족을 겨냥한 다양한 아웃도어 가전도 늘리고 있다. 한파가 몰려오는 가전 시장. 기존 가전을 좀 더 개인화된 똑똑한 제품으로 탈바꿈시키는 등 수요자 맞춤형 가전으로 넓혀야 한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