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대37! 지난 9월 22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드녹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린 국제표준화기구(ISO) 차기 회장 발표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조성환 현대모비스 대표이사가 우려를 덮고 넉넉히 ISO 차기 회장에 당선된 것이다.
지난 5월 ISO 회장 후보 등록으로 본격화된 ISO 회장 진출을 위한 수년간의 우리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120여개 ISO 정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홍보물 발송, 대면 기관 방문 및 화상회의 등 우리의 첫 ISO 회장 진출을 위해 쉼 없이 달렸다.
총회가 시작된 9월 19일 ISO 167개 회원국 앞에서 회장 출마자로서 공식 브리핑을 시작으로 20일 우리 후보를 알릴 기회로 마련된 공식 만찬(Dining with KATS)을 통해 후보자의 경험과 비전을 자연스럽게 알렸다. 선거 하루 전인 21일에는 지지 표명이 미진한 국가들과 양자회의를 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조 대표의 장점을 호소했다. 그리고 22일 선거일, 우리나라의 사상 첫 ISO 회장 진출이라는 역사를 이루어 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ISO 회장 진출의 원동력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과 통상 전략에서 표준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국제정세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최근 스포츠와 음악, 산업 기술에서 한국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방탄소년단(BTS)이 가져온 K-팝 신드롬에서 축구에는 손흥민, '오징어게임'으로 이어지는 K-드라마 열풍까지 더해 한국의 품격은 높아졌다. 현대·기아 자동차에서부터 LG 가전, 삼성 스마트폰까지 이제 한국은 곧 품격과 신뢰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번 ISO 회장 진출은 우리의 적극적인 선거 홍보 노력과 더불어 글로벌 사회에서 차지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위상이 투표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각국은 표준을 자국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보고 국제표준 선점 노력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표준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비롯한 국제 전략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고, 지난 9월 열린 차기 ITU 사무총장 선거에서 자국 후보를 당선시키며 국제표준 무대에 재등장하였다. 국제표준화 강자인 유럽도 현 ISO 회장(스웨덴), 차기 IEC 회장(벨기에) 등 국제표준화 기구 리더십에 꾸준히 유럽 지역 출신을 진출시키고 EU 가치 및 기술 조건 보호 등을 위한 EU 표준화전략(Strategy on Standardization)을 발표하는 등 국제표준화 영향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구축한 미국, 독일 등과 긴밀한 표준 협력 관계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1963년 ISO 가입 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우수한 국제표준화 활동, 표준전문가들의 역량과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 구축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매년 70건 이상의 국제표준을 새롭게 제안하고 200여명의 국제표준화기구 임원진을 배출해 왔다. ISO 이사국에 7회나 진출했으며, 국가별 활동 순위에서 세계 8위를 기록하는 등 국제표준화 활동에 꾸준히 이바지해 왔다.
이러한 활동 성과를 바탕으로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 5월 회장 선거 입후보 이래 투표권을 보유한 124개 ISO 정회원 기관을 대상으로 지지 요청 서한홍보 비디오 발송은 물론 ISO 내 오피니언 리더 국가와의 양자 면담 개최, 남미·중동·아프리카·유럽 등 지역별 표준화 기구 대상 홍보와 지지 요청 등 선거 활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76개 코트라 무역관, 98개 외교부 재외 공관, 세계 각국에 진출한 국내 시험인증 기관은 물론 현대모비스 및 현대차가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지지 교섭을 실시하는 등 민·관이 합동하여 조 대표의 차기 회장 당선을 도왔다.
셋째 공학자이자 경영자로서 많은 성과를 거둔 조 대표 개인의 우수한 역량 덕분이다.
ISO는 시장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제표준 개발 시스템 구축에 관심이 많은데 조 대표가 이를 주도해 나갈 최적의 인물로 평가한 것이다.
우선 조 대표는 글로벌 지점과 사업장을 두고 있는 자동차 부품 기업 현대모비스의 대표이사로서 지도력과 동기 부여 능력을 바탕으로 탁월한 경영 성과를 창출하는 등 최고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입증하였다.
현대차 미국 기술연구소 법인장 등 다양한 국제 경험과 높은 수준의 외국어 구사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라는 점도 가점 요인이었다.
국제정세가 천(天)이라면 우리나라가 그동안 축적해 온 국제표준화 성과와 협력관계는 지(地), 조 대표의 역량은 인(人)이다. 이른바 천지인이 어우러져서 ISO 회장 진출의 쾌거를 이룬 것이다.
기술인으로서, 경영자로서 조 대표가 산업계에서 쌓아 온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ISO를 기술 발전과 시장 환경 변화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조직으로 만들어 갈 것을 확신한다.
1963년 ISO에 회원국으로 가입할 당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가 만든 국제표준을 받아서 사용하는 표준 수혜국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국제표준화를 선도하는 표준 기여국으로 발전하였다. 그런데도 민간의 국제표준화 활동 참여가 저조하다는 점은 우리나라의 약점이다. 국제표준 선진국들은 기업의 CTO와 연구직 임원들이 국제표준화기구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젊은 기술자 시절부터 국제표준화 활동에 참여하며 경험과 인맥을 쌓고, 국제표준 제정 시 자국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도록 노력한다.
이번 ISO 회장 진출은 무엇보다 정부와 민간이 합심으로 얻어낸 결과로, 민간 기업 현대모비스 조 대표의 ISO 차기 회장 피선을 계기로 국내 산업계의 국제표준화 활동 참여가 더욱 확대되는 기반이 마련되길 바란다. 우리 기업이 국제표준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이익을 창출할 때 국제표준화 활동은 더욱 가치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ISO 회장 진출로 우리나라는 표준으로 국제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초석을 놓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미국, EU, 일본 등 기존에 긴밀한 협력을 해 오던 국가는 물론 우리와 ISO 회장 자리를 놓고 경쟁한 중국 등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진정한 표준 리더국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ISO를 이끄는 세계적인 리더 배출을 시작으로 앞으로 세계 표준화 무대를 이끌고 가는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장 이상훈
이상훈 국가기술표준원장은 정통 관료로서 산업기술 연구개발(R&D)과 정보기술(IT), 표준 정책 등 분야에 두루 밝다. 원만한 소통 능력으로 대내외 신망도 높다. 이 원장은 서울 성동고와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거쳐 미국 MIT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기술고시 28회로 공직에 입문한 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수요관리정책과장, 국민안전처 특수재난지원관, 산업부 산업기술정책관, 국표원 표준정책국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2월부터 원장으로서 국표원을 이끌고 있다. 국내 최초로 한국인이 국제표준화기구(ISO) 회장으로 선출되는 데 일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