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현의 테크와 사람]<14>연결망의존성과 경로의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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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어느 정치인의 휴대폰에 수천명의 연락처가 저장돼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내 스마트폰 연락처에 수천명이 있더라는 얘기를 요즘은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10여년이 지나고 보니 사람들로부터 받은 명함은 계속 쌓여 가고,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도 안 나는 사람들의 이름이 우리 스마트폰 주소록에는 가득하다. 그 많은 사람이 모두 '절친'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아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약한 연결'은 점점 커지고 신경 써야 할 인맥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연결망에 의존하고 때로는 지인 찬스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연결망 활용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부정부패의 근원이 될 수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한 번쯤 내가 활용하려는 연결망이 정당한 것인가를 자문해 봐야 한다. 일상의 부패는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되지만 어디까지가 민원이고 어디까지가 부패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관행이 우리 사회에 남아 있지는 않은지 짚어 봐야 한다.

꽤 오래전 미국의 연구에 의하면 대학 진학의 중요한 효과 가운데 하나가 중대한 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주변 사람 수가 증가하는 데 있다고 한다. 이 숫자를 핵심논의연결망(코어 디스커션 네트워크)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대학 생활을 통해 다른 전공의 선후배도 알게 되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튜브와 소셜미디어가 곧 극장이고 학교인 현재 상황에서는 꼭 대학 학위가 있어야 그러한 연결망을 보유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온라인상의 수많은 동호회가 때로는 오프라인 만남도 하는 것을 보면 이제 대학이 핵심논의연결망을 제공하는 주된 채널이라는 논리는 성립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로빈 던바라는 인류학자가 인간의 적정한 연결망 크기는 150여명이라고 주장하자 그보다는 많거나 적다는 반론도 나왔다. 던바의 주장은 우리가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 수는 제한되어 있으니 인간관계를 넓히는 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인지 고민해 봐야 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사회적 연결망 외에 사람들에게는 경로의존성이 있다. 경로의존성이란 일 처리에서 한가지 경로에 익숙해지면 설령 그 경로의 비효율성이 발견되더라도 계속해서 의존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출근길에 특정한 길을 이용하는 것도 그러한 예가 될 것이다. 사교육만이 정답이 아님을 알면서도 왠지 불안해서 고액 사교육에 의존하는 부모 심리도 그렇다. 지역 정치인에게 끊임없이 실망하면서도 구관이 명관이라며 그냥 낯익은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는 심리도 해당될 지 모르겠다. 경로의존성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효율은 엄청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의존하고 끊임없이 시간과 자원을 낭비한다. 경로의존성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다. 다른 경로를 채택하는 데 들어가는 기회비용이 사람들의 혁신을 막는다는 입장도 있고 경로의존이 사실은 비용을 오히려 절감시킨다는 입장도 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이미 주어진 관행을 맹목으로 따르는 것은 일상의 작은 혁신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습관적으로 남에게 의지하는 버릇에서 벗어나 보자. 습관적으로 관행을 따르는 버릇도 버리자.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 기술을 기존의 의존성을 타파하는 도구로 활용하자. 쉽진 않겠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도구는 그 자체가 혁신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혁신 여부를 좌우한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alohakim@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