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K대학교 이과대학원생을 대상으로 '디스플레이 산업'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디스플레이가 TV, 스마트폰 등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학교, 회사 등 모든 곳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산업이며 세계 시장을 주도해 왔던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산 역사에 대해 강의했다. 그러나 필자를 바라본 MZ 세대인 젊은 학생들의 무관심한 표정에서 50대 꼰대의 '라떼는 말이야'라는 모습이 투영됐을 것이란 건 필자의 지나친 기우였을까.
필자가 20대 시절에는 일본 전자산업을 대표하는 소니, 샤프, 히타치 등 기업은 지금의 애플이나 삼성, LG처럼 세계를 호령하는 기업이었다. 워크맨이나 TV 등 일본 전자제품은 부유한 사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그러던 일본 전자산업이 2000년대 중반부터 쇠락하기 시작하더니 이젠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했다. 일본 전자산업이 몰락한 배경에는 전자산업의 핵심 분야인 디스플레이 경쟁력을 상실한 점이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일본은 디스플레이에 대해 차세대 기술투자를 머뭇거리다 투자 시기를 놓쳤다. 추격해오던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에 추월당하면서 지금은 디스플레이 산업이 완전히 쇠퇴했다. 2012년 경쟁력 확보를 위해 소니, 도시바, 히타치 3개 사의 액정표시장치(LCD) 사업부를 합병해 JDI(Japan Display) 기업을 탄생시켰으나 아직까지 경영난을 겪고 있다.
마찬가지로 2016년에는 100년이 넘은 샤프가 대만 기업에 인수됐다. 2018년에는 도시바 TV 사업부도 중국 기업에 매각됐다. 2001년 한국은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 유인 정책으로 디스플레이 기업이 가장 앞선 기술인 5세대 LCD에 대한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2004년에 세계 LCD 시장 1위 자리에 올라섰다. 그 이후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6세대, 7세대, 8세대 LC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대한 투자 확대로 지난 2004년부터 2020년까지 17년간 세계 1위의 디스플레이 강국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고 있다. 전폭적인 중국 정부 지원에 힘입어 BOE, CSOT 같은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이 무섭게 쫓아오더니 결국 지난해 중국이 세계 시장 점유율 41.5%로 세계 1위 국가로 등극했다.
중국이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요인은 세계 LCD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면서다. 전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점유율이 대폭 상승했다.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은 총투자비의 10% 자금만 보유하고 있어도 공장을 건설할 수 있다.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 1위 BOE는 2018년 10.5세대 LCD B9 공장의 총투자비 56억달러 중 10%인 5억6000만달러를 투입해 세계 최대 LCD 공장을 세웠다. 마찬가지로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 2위 CSOT도 선전에 10.5세대 LCD T6, T7 공장을 전체 투자비의 25%를 들여 건설했다.
한국은 비록 중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넘겨줬으나 프리미엄급 OLED 시장에서는 지난해 세계 시장 83%를 점유했다. 저온다결정산화물(LTPO) OLED로 한정할 때 98% 점유율로 한국이 OLED 시장을 주도하며 기술 우위를 지속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은 OLED 분야에서도 중앙, 지방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과 기술격차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모바일과 TV에 이어 이제는 태블릿, 노트북 등 IT 시장에서도 기존 LCD를 OLED가 대체하면서 OLED 대세화가 빠르게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태블릿, 노트북, 모니터를 포함하는 IT시장에서 OLED 비중이 2022년 3.9%에 불과하지만 2027년에는 23.6%로 전체 시장의 약 4분의 1을 OLED가 점유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태블릿용 OLED를 6세대가 아닌 8세대에서 생산할 경우 제조비용을 30% 절감할 수 있다. 글라스 효율도 6세대에서는 77.5%인 반면에 8세대에서는 86.0%로 약 10%P 가까이 생산성을 확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 모두 현재 6세대에서 생산하고 있는 IT용 OLED를 생산력 확대와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8세대 OLED 투자를 검토 중이다.
모바일과 TV 시장은 한국의 선제 투자로 시장 주도권을 확보한 반면에 IT시장은 한국과 중국이 같은 출발선에 있는 현실이다.
모바일과 TV처럼 IT시장도 한국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쟁국보다 빠른 투자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앞으로는 디스플레이가 미래 산업의 핵심기술 역할을 수행하면서 응용처가 확대되고 중요성은 더욱 부각 될 것이다.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미래 유망산업을 보면 디스플레이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초소형·초고해상도 등 고도화된 디스플레이가 핵심기술이다.
현재 우리 디스플레이 기업은 대내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경쟁국과의 격차를 확대하기 위해 OLED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또 VR·AR, 자동차 등 미래 시장을 선도적으로 개척해 나가고 있다. 더 나아가 초격차 기술확보를 위해 무기발광 디스플레이에 대한 기술개발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우리 디스플레이 기업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중국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에서도 정책적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일본 전자산업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세상에 영원한 존속을 약속한 기업은 없을 것이다. 자칫 방심하다가 우리 디스플레이 등 전자산업이 몰락한 후, 50대가 된 지금의 MZ세대가 포스트 MZ세대 학생들 앞에서 “라떼는 말이지, 삼성, LG 제품이…”이란 말을 하며 추억이나 떠올리게 해선 안된다.
<필자소개>【사진1】
이동욱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1990년 제 34회 재경고시에 합격한 후 30년간 공직에 몸 담았다. 연세대 경영학 학사, 서울대 행정학 석사, 건국대 국제무역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9년 지식경제부(現산업통상자원부) 성장동력정책과장을 맡아 '산업융합촉진법' 제정 등 신산업장출정책을 총괄한 바 있으며, 2017년에는 중견기업정책국장으로 재직하며 우리나라 기업 구조의 성장사다리 마련을 위한 중견기업 육성 정책을 이끌었다. 이부회장은 올해 3월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으로 취임했다.
이동욱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ldw@k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