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다시 자동차산업 전환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기동력차(이하 전기차) 보급이 희소금속 공급 차질과 부족뿐 아니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내연기관차와 가격 동등성 달성 시점이 지연될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배터리 전기차 화재로 인한 안전성 문제도 제기된 바 있다. 그럼에도 전기차 판매는 꾸준히 증가하고 내연기관차 판매는 감소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과 중국 소비자가 전기차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전기차 주도로 친환경차 판매 증가
일반적으로 전기차는 배터리전기차(B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PHEV), 수소전기차(FCEV)와 태양광 전기차로 구분한다. 여기에 하이브리드카(HEV)를 더해 친환경 자동차로 분류한다. 세계 전기차 판매는 지난해 전년 대비 110.7% 증가한 666만대를 기록한 후 올해는 950만대로 증가할 전망이다. 전기차 수요가 HEV 수요를 추월했으며 BEV 수요가 PHEV 수요를 앞서고 있다. 올해 상반기 세계 HEV 판매는 작년 동기 대비 5.1% 증가한 289만대를 기록했으며, 전기차 판매도 63% 증가한 416만대에 달했다. BEV가 305만대, PHEV가 111만대 판매돼 BEV가 HEV를 상회했다.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는 8170만대에 달할 전망이다. 파워트레인별로는 전기차가 950만대, 하이브리드카가 590만대, 내연기관차가 6630만대를 차지할 예상이다. 국가별로는 지난해에 중국, 유럽 7개국, 미국과 우리나라의 10개국이 세계 전기차 판매의 88.5%를 차지했으며, 올해에도 이들 10개국이 전기차 판매를 주도할 전망이다.
중국의 전기차 판매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올해 판매는 지난해의 거의 두 배 수준인 650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는 올해 말에 종료하기로 했던 신에너지자동차(NEV) 구매보조금 지급을 내년 말로 연장했다. 미국의 전기차 판매도 정부가 IRA를 발표한 후 지난 9월에 20만대를 넘어섰다. 단지 유럽의 전기차 판매가 에너지와 원자재 공급 문제로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전기차 판매가 둔화하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의회는 미국과 중국처럼 전기차 산업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국내 일각에서는 아직 내연기관차에 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정부가 얼마 전 발표한 '자동차산업 글로벌 3강 전략'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2030년에 신차 판매의 절반은 내연기관차가 차지할 전망이다. 탄소중립 목표 연도인 2050년에도 내연기관차는 신흥개도국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될 것이다.
하지만 주요국 정부가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할 계획이고 국내 부품 공급업체들의 전환이 빨라지면서 국내에서 내연기관차를 생산해 수출하기는 점차 어려워질 것으로 점쳐진다. 현재 국내 자동차 업계의 수익창출원은 내연기관차지만 주요국이 이산화탄소 배출과 연비 관련 벌금 제도를 강화하고 있어서 실질 수익률 저하는 불가피하다.
◇산학협력을 통한 부품업계의 전동화 지원 확대
최근 국내 완성차 업체와 정부는 부품업계가 미래차 전환에 어려움을 겪자 대규모 자금을 공동으로 조성해 지원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는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 자동차 수요가 급감했다가 회복한 2010년부터 전기차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국내 업체가 생산한 내연기관차가 세계 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자 국내 전기차 생산과 판매는 지지부진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세계시장 판매는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에 400만대를 기록했으나 2015년에는 800만대로 배증했다. 세계시장 점유율은 치솟았으며, 수익성 역시 개선되자 내연기관차는 캐시 카우(Cash cow)로 불렸다.
이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미국의 보스턴컨설팅 그룹은 캐시카우를 시장점유율이 높아 꾸준한 수익을 보장해 줄 수 있지만,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낮은 제품이나 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2015년에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가 터지고 2017년 세계 자동차 판매 물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한편, 전기차가 신차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를 넘어서자 전세가 역전됐다. 내연기관차 판매는 감소하기 시작했고 전기차 판매는 급증했다. 국내 자동차산업은 2018년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미래차 주력부품인 전기전자(전장) 부품산업을 세밀히 들여다본 결과 정보통신기술 강국이라는 위상과는 달리 전장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국내 부품업체 수는 100여곳에 불과했다.
자동차 수요 부진에 따라 공급업체의 수익성도 급속히 악화했다. 부품업계는 위기에 빠지고 있다면서 정부에 손을 내밀었다. 정부가 시시각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자금을 지원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공급망 단절이 반복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세계 자동차 수요가 전년 대비 5% 증가해 공급업체가 한숨 돌리는 듯했다.
하지만 미국이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주요국이 경쟁적으로 금리를 인상하자 경험해 보지 못한 복합위기가 몰려오고 있다고 아우성친다.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내년에도 수요가 정체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자동차산업의 불황이 장기화하자 국내 완성차 업체와 정부가 공급업체의 경영과 고용 안정을 위해 대규모 자금 지원에 나선 것이다.
◇소모적 논쟁보다는 '산업전환'에 중지 모아야
국내 공급업체의 미래차 준비가 부족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인력 부족 문제는 단기간 내에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전기차 심장인 배터리, 미래차의 뇌세포라 할 수 있는 반도체뿐 아니라 차량용 소프트웨어 인력까지 수만명의 인력이 부족하다. 정부가 미래차 인력 양성을 위해 전방위적으로 지원하지만 교수 요원마저 부족해 지원의 효율성 문제마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더이상 산업전환과 관련한 소모적 논쟁은 지양해야 한다. 개개인의 이해를 떠나 압축성장의 신화를 창출한 국내 자동차산업이 소프트웨어 기반 전기동력 커넥티드카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합해야 한다.
자동차와 부품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다시 주저앉을 수 있다. 세계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7월까지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했던 현대차그룹은 9월에 5위로 밀려났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 국산 전기차는 찾아보기 힘들다. 잘나가던 유럽 전기차 시장도 노란불이 켜졌다. 지난 9월 중국의 자동차 수출이 우리보다 12만대 많은 31만대를 넘어섰다.
중국업체는 미국 시장 수출길이 막히자 우리가 공들여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온 유럽 시장에 전기차를 앞세워 진출하고 있다. 수송과 환경(Transportation&Environment) 연구소는 중국기업들의 유럽 전기차 시장점유율이 5%를 넘어섰고, 2025년에는 BEV 시장의 최소 9%, 최대 18%를 장악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에서 철수했던 제너럴모터스(GM)도 재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 자동차업체가 환경규제를 강화하는 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배경에는 공급업체들의 역량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품업체 중 미래차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 비중이 5%에 불과하지만 중국은 14%, 미국은 20%가 넘는다.
기술 발전은 무한하지만, 내연기관차 연비 제고는 유한하다. 2014년 국내에 저탄소협력금 제도 도입을 검토할 때 국내 완성차 업계는 연 2.5%의 연비 향상도 어렵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아직도 소비자는 충전기 부족과 긴 충전시간에 불편을 느끼고 있다. 세계 전기차 판매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의 충전기 보급은 9월 말 기준 445만기다. 전기차 3대당 1기 수준으로 우리보다 적지만 배터리 교환과 무선 충전 등 다양한 충전 시스템을 운용한다. 충전 시간도 단축되고 있는데 최근 미국 항공우주연구원(NASA)이 5분 이내에 전기차 충전이 가능한 기술을 제안해 눈길을 끌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가 상반기 세계시장에서 판매 3위를 기록했지만, 전기차 시장에서 위상이 약화할까 우려된다. 올해 1~8월 중 세계 자동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전기차 비중은 15%에 달했다. 1%를 넘어선 지 5년 만이다. 올해 세계 전기차 판매 물량은 1000만대에 육박할 것이다. 1회 충전 시 1000㎞를 주행하는 고급 모델도 등장했으며, 1000만원 미만 가격대의 모델도 다양화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보급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유럽의 전기차 판매 둔화를 미국과 중국이 보완하면서 전기차 수요는 지속해 증가할 전망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와 정부가 전기차로의 산업전환에 팔 벗고 나선 상황에서 '학연(대학·연구기관)'이 인력 양성과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할 때다.
이항구 호서대 기계자동차공학부 조교수 hglee@katech.re.kr
○…이항구 교수는 1987년부터 산업연구원에 근무하며 자동차산업 연구를 담당했다. 2020년부터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면서 호서대 조교수를 겸하고 있다. 친환경자동차 보급뿐만 아니라 기업 간 협업법 제정, 상생결제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 국토교통부 자율주행자동차 융복합 미래포럼 위원, 중소벤처기업부 규제 특구 자문위원, 환경부 WTO '무역과 지속가능 환경협의체'(TESSD) 대응 TF 위원, 인베스트 코리아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