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운영하는 연구기관에 교육 기능을 부여해 우수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국가연구소대학원'은 보통 사람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고급 연구개발(R&D) 인재 확보가 더없이 치열해진 현대에 접어들어 그 역할은 갈수록 중요성을 더한다. 독일과 미국, 중국을 비롯한 과기 선진국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국가연구소와 연계된 대학원을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에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가 있다. 2003년 설립, 머지않아 20주년을 맞게 되는 이곳은 이미 준비된 인력을 현장에 배출하고 있다. UST가 키워낸 인력과 성과, 학교가 가진 의미를 돌아본다.
UST는 32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 교육 기능을 부여, 일반 대학과 차별화된 교육시스템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나 한국화학연구원과 같은 연구기관에 '스쿨'을 설립, 연구와 교육을 병행케 한다. 연구기관이 대학원으로, 연구원이 지도교수가 되는 식이다.
이런 교육에 힘입어 키워내는 '명품' 연구인력은 현장에 나서기 전 떡잎 단계부터 실질적 연구 성과로 두각을 나타낸다. 갖가지 주요 저널에 안방 문 넘어가듯 입성하고 있다.
◇분야 가리지 않고 UST 학생 우수성과 쏟아져
올해 성과만 살펴봐도 그 수가 상당하고, 영역도 다양하다. 대표 사례로 에너지·환경 분야에서는 ETRI 스쿨 한지수 박사과정생이 관련 논문 1저자로, 에너지 저장이 가능한 '스마트윈도우' 기술 개발을 이뤄낸 성과가 있다. 이는 향후 디스플레이와 센서 등 다분야 활용이 가능한 첨단 기술로, 관련 성과는 에너지 분야 상위 1.5% 내 저널인 '인터내셔널 저널 오브 에너지 리서치'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한국전기연구원(KERI)에서 교육을 받은 정태종 박사과정은 나날이 중요해지는 리튬이차전지 안전 분야에서 이름을 알렸다. 리튬이차전지 발열을 관리해 화재를 예측하는 기술 개발에 논문 1저자로 참여해, 연구를 주도했다. 관련 논문 성과 역시 세계적 학술지 '저널 오브 파워소스'에 게재됐다.
바이오·헬스 영역에서는 임재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스쿨 학생이 초기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는 플랫폼 개발에 힘써 주목받았다. 혈액검사만으로 손쉽게 진단할 수 있는 점에서 차별성을 보여, 성과가 바이오센서 분야 유력 저널인 '바이오센서와 바이오일렉트로닉스'에 소개됐다. 임재우 학생은 이를 포함해 SCIE 국제학술지 5년에 1저자로 참여했고, 총 7개 특허를 출원하는 등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스쿨의 김근회 석박사 통합과정생도 논문 1저자로, 손상된 DNA 조각의 체내 분해 요인을 밝혀냈다. 개인 맞춤형 암 치료연구에 기여할 이 연구는 '뉴클레릭 에시즈 리서치'라는 저명 저널 게재됐고,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한국을 빛낸 사람들' 논문으로도 선정됐다.
식물·기후변화 영역에서도 조승희 생명연 스쿨 박사과정생이 사막화와 같은 고온 환경에 견디는 작물 개발에 핵심 역할을 했다. 관련 논문은 '플랜트 셀'에 게재됐다.
◇SCI 논문 양산…졸업생 절대다수 연구 현장으로
이는 물론 전체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박사 졸업생 기준 1명당 SCI급 논문 참여는 4.15편, 1저자 참여는 1.72편에 달한다. 특허 출원도 1.16건이나 된다.
우수한 학생은 홀로 수많은 성과를 내기도 한다. 올해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받은 정혜령 박사는 최상위권 SCIE급 국제학술지에 1저자 논문 10여편을 게재했다.
UST 학생들은 국가 R&D에도 다수 참여해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다. '2021~2022 국가 R&D 우수성과 100선' 중 4분의 1인 25건에 UST 교원이 참여했다. 2020년 국가 R&D 우수성과 100선의 에너지환경 분야 최우수 성과는 김현우 학생(현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이 1저자로 참여했다. UST 졸업생들이 개인의 발전은 물론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도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수 성과가 나오다 보니 학교를 나선 거의 모든 이들이 취업은 당연지사고, 연구 현장에서도 활약하는 모습을 보인다.
개교 이래 총 3185명 석·박사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취업률이 이례적으로 높다. 지난해 기준 UST 공식 취업률은 92.5%다. 전체 80% 이상, 박사 졸업생 90% 이상은 연구직에 몸을 담게 됐다.
많은 이들이 그동안 수련했던 출연연에 몸담게 되는데, 그 수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연구 능력을 인정받고, 한 명의 연구자로 성장한다는 뜻이다. UST 졸업자의 출연연 정규직 취업자 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41.4% 늘어났다.
김이환 UST 총장은 “UST는 내년에 20주년으로 아직 그 역사는 짧지만 캠퍼스는 지난 세월 우리 과학기술을 이끌어온 40~60년 역사의 출연연”이라면서 “배출 인력 절대다수가 미래 인재로서 연구 현장에 기여하고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고 있으며, 국제 정세상 UST 배출 인력은 그 가치를 앞으로 더 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