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전 아울렛 사고, SPL 끼임 사고, 안성 물류창고 붕괴 등 중대 재해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익숙한 일터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중대 재해는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가족의 행복을 일거에 앗아간다. 돌이킬 수 없는 중대 재해는 우리 사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우리나라 중대재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로 경제적 수준이 유사한 국가들에 비해 3배 이상 많다. 올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시행 이후 전체 중대재해는 작년 대비 소폭 감소했으나 법 적용 사업장의 중대재해는 오히려 증가했다. 최근 소규모 건설·제조 현장을 중심으로 고령자, 외국인 근로자 등 안전 취약계층도 증가하고 있어 향후 감축여건도 매우 불확실하다.
한국은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 제정 이래 '규제와 처벌' 중심의 중대재해 감축 전략을 유지해 왔다. 생산시스템, 기계·설비의 진보가 빠르게 진행되는 현 시점에서 이 전략은 여러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안전보건법령에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를 포함하여 개별 작업장의 모든 위험요인을 망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또한 당사자인 사업주와 근로자가 '실질적 중대재해 예방'보다 '규정에 적발되지 않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하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중대재해 감축은 노사의 인식과 관행의 변화를 통한 안전문화 정착에 달려있다. 그러나 안전을 비용으로만 접근하고 생산의 부가적 요소로 치부하는 그간 경영 관행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선 작업자들의 참여와 안전한 작업 행동도 아직은 미흡하다.
일례로 선진국은 안전상 문제가 발생하면 매뉴얼을 새로 만들거나 이미 만들어진 매뉴얼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반면에 우리는 매뉴얼이 아예 만들어 있지 않거나 만들어져 있더라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선진국은 경미한 고장·장애도 경시하지 않고 작업 절차서가 있어야만 작업에 착수한다. 그러나 우리는 절차서가 없더라도 직감이나 경험에 의지하여 작업을 진행한다.
매년 800명 이상이 사고로 사망하고 최근 8년째 사고 사망 만인율이 정체돼 있는 것은 구조적 원인 때문이다. 정부는 기존 사고와 방식을 뛰어넘는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중대재해를 획기적으로 감축하기 위한 로드맵을 준비 중이다. 먼저 이 문제를 고민했던 선진국은 촘촘한 정부 규제만으로는 중대재해를 효과적으로 감축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1970년대 이후 '자기규율과 책임' 원칙하에 노사의 자발적 노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자기규율이란 노사가 협력하여 자치적인 안전규범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스스로 위험을 통제, 관리·감독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위험을 생산하는 사업주와 위험에 직면하는 근로자가 협력하여 상시적으로 사업장에 숨겨진 위험을 찾아내고 사업장 특성에 맞는 안전보건대책을 지속 실시하는 것이다. 이는 안전보건 분야에 있어 엄청난 혁신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평가된다. 최저기준으로 법령에 규정된 사항을 준수하는 것만으로는 다종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중대재해를 온전히 예방하기 어렵다. 안전은 사람의 마음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만큼 스스로 할 마음이 생겼을 때 최대한 성과가 나올 수 있다. 우리도 선진국 경험을 참고하여 중대재해 감축 전략을 '자기규율과 책임' 원칙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는 국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원인과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대재해는 원·하청 사업주, 관리자, 근로자 등 안전보건 주체가 각각의 역할과 권한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이행할 때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정부는 사업주와 근로자, 원청과 하청이 원팀이 돼 각자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다 할 것이다.
중대재해의 획기적 감축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안전문화가 정착돼 노사가 안전을 '법과 규제'가 아닌 '당연한 가치'로 인식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에 노사 참여와 국민 공감을 통한 안전문화 확산에도 역량을 집중하고자 한다.
고용노동부는 이달 중으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마련해 국민에게 상세하게 설명할 예정이다. 20여년간 제조업과 건설업 비중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여건하에서도 여러 정책 노력을 통해 중대 재해를 3분의 1 수준으로 감축한 바 있다. 이를 살려 중대재해 감축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로드맵을 마련하고 세부 과제를 착실히 이행한다면 2026년까지 OECD 평균 수준 달성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정부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안전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필자소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 30여년 간 노동계에 몸담아온 노동분야 전문가로, 한국노총 사무처장을 거쳐 노동계 출신 최초로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을 지냈다. 한국노총 정책연구위원, 기획조정국장, 정책기획국장, 대외협력본부장 등을 거쳐 최저임금심의위원회 연구위원으로도 일했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전문위원과 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노사관계 분야에 폭넓은 경험을 쌓아왔다. 이후 한국노총 기획조정본부장과 21세기 노사관계연구회 회장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2년간 건설교통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 한국노동경제학회 이사와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부회장도 역임했다.
이 장관은 노사관계에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전문가로 꼽힌다. 노동현장의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 바탕으로 노동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고 합리적 노사관계 정립 밑그림 그려낼 적임자라는 평가와 함께 장관 자리에 올랐다. 취임 일성으로 “산업재해 사망 사고를 막는 데 모든 역량을 쏟겠다”고 선언한 이 장관은 직접 산재 현장을 찾아 사고 재발 방지를 해법을 찾는 등 중대재해 감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