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 연구기관에서 시행되던 블라인드 채용 전면 폐지를 결정했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들의 지속적인 개선 요청이 반영된 이번 결정은 국가 연구기관 우수인력 확보를 통한 연구 경쟁력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출연연들은 연구기관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신규 채용이 대부분 연구업무를 수행하는 연구자에 집중돼 있다. 따라서 연구업무 수행 능력 전문성, 적합성 및 수월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연구실적 등 연구 활동 전반에 대한 세부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하나 현재 블라인드 채용 방식으로는 연구실적에서 학교명이나 교신저자를 기재하지 못하는 등 한정적인 정보만 수집할 수 있어 지원자들 연구수행 능력을 실질적으로 검증하기가 어려웠다.
구체적인 일례로 직장 경력, 자기소개서 내용 이외에 평가위원이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항목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연구자 채용 시 연구실적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지만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해 연구실적 진위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외부 평가위원을 위촉할 때는 이해관계를 사전에 파악할 수 없어서 평가에 참여하기로 정해진 외부 평가위원이 전형 과정 중에 지원자를 대면한 이후 이해관계를 인지하고서 회피 신청을 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 이러한 맹점으로 인해 정년퇴직한 지원자는 연구원 정년제도로 채용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채용 전형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어 곤란을 겪기도 했다. 그 결과로 연구주제 민감성으로 인해 극도로 보안이 요구되는 한 출연연의 경우, 외국 국적 지원자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연구자 채용 최종단계에 합격하는 부작용을 낳은 적도 있다.
또 실제 현장에서는 응시자 논문 제목 및 메타정보 검색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학교 정보를 비롯해 블라인드 처리되는 정보를 유추할 수 있어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유용성이 다른 성격의 공공기관 채용보다 현저히 떨어졌고, 이러한 추가적인 확인 과정 등으로 오히려 행정적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즉 연구기관들은 블라인드 채용을 완화하거나 혹은 예외 기관으로 지정돼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연구수행 인재 채용에 관해서는 이름, 성별, 나이, 가족관계 등 연구업무수행과 무관한 개인정보는 당연히 제외하고, 논문 전문, 과제참여 내용 및 역할, 연구실 및 학교 정보, 학교에서 수확한 내용과 연구 배경을 공개하는 등 전반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완화하여 적용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러한 애로사항으로 인해 블라인드 채용이 시행되는 동안 공공 연구기관들보다 지원자 연구역량을 자세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많이 확보할 수 있는 기업에서 우수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 쉬웠다. 즉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해 공공 연구기관들은 연구 수월성 확보가 어려워졌고, 국가 미래를 결정할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역량 하락까지 우려됐다.
인재를 채용할 때 공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공정성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개인 역량과 성취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번 블라인드 채용 폐지로 공공 연구기관에서는 연구 활동을 희망하는 지원자 연구역량을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원자의 연구역량에 대한 정확하고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자 채용이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이 확립되면 해당 연구기관에서 정한 임무와 목표에 부합되고 수월성 있는 우수 연구자 확보가 촉진될 것이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과학기술 글로벌 패권 경쟁으로 퍼스트무버(First Mover)로서 역할과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연구기관이 고유 연구 활동을 보다 수월성 있게 전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재수 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 회장 jaesoo@kis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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