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는 올리브 기름을 짜는 착즙기로 큰돈을 벌었다. 기하학을 최초로 정립한 그는 천문에도 밝았다. 자신의 온갖 지식을 동원해 올리브 농사 주기를 알아냈다. 흉년이 든 이듬해에 풍년이 온다는 비밀이었다.
그는 흉년이 든 어느 해 농부들로부터 올리브 착즙기를 싼값에 모조리 사들였다. 그리고 이듬해 풍년이 들자 웃돈을 얹어 되팔았다. 당시 올리브는 '황금의 액체'로 불렸다. 각종 음식을 만들 때 쓰였고, 기름은 밤을 밝혀 주는 등불과 치료용 약품으로도 쓰였다. 농부들은 턱없이 비싼 가격에도 착즙기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되살 수밖에 없었다.
미래를 읽는 힘은 부와 직결된다. 금융위기(IMF)와 리먼 브라더스 사태 시절 등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더 많은 부를 축적한 기업이나 개인이 있다. 이들의 스토리를 따라 가다 보면 하나같이 미래를 예측한 혜안을 만난다.
3분기 실적발표에서 '어닝 쇼크'가 줄을 이었다. 한국경제를 떠받쳐 온 반도체마저 무너졌다. 수출도 2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최악의 경제위기로 불리는 '스테이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들린다.
그럼에도 '나 홀로 질주'한 기업이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모든 디스플레이 기업이 최악의 성적표를 받을 때 사상 최대 실적을 작성했다. LG이노텍, 대덕전자 등 몇몇 부품기업도 경쟁사와 반대로 호황을 누렸다. 비결은 탈레스처럼 미래를 읽는 힘이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이후를 내다보고 전략적으로 투자한 제품이 불황에도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반면 기존 비즈니스에 안주하거나 미래 예측을 잘하지 못해서 엉뚱한 곳에 투자한 기업은 추락했다.
세계 경제전망은 어둡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에 소비는 얼어붙었고, 자본시장 경색으로 기업은 자금난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비상경영, 긴축재정, 구조조정 등 암울한 단어가 부쩍 눈에 띈다.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에도 애를 먹고 있다. 어려운 시장 상황에 감산이나 투자 감축을 못박은 기업도 있다. 매년 상향하던 판매량 목표치를 줄이는 곳도 있다. 미국 빅테크에서는 벌써 감원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힘든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길지 여기저기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상식적으로 불황에 긴축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위기가 기회'라는 무모한 구호를 강요할 수만 없다.
그런데 경제는 회복탄력성이 있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을 수밖에 없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자부품 시장은 항상 상승과 하강 사이클을 그려 왔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 패권을 미국이 일본에 내주고, 일본이 다시 한국에 내준 역사를 되돌아 보자. 불황에 투자를 멈칫하는 순간이 있었다. 반대로 과감하게 기회를 잡은 기업도 있었다.
'묻지 마' 투자는 금물이다. 탈레스처럼 미래를 읽는 혜안이 필요하다. 흉년 뒤 풍년에 꼭 필요한 '착즙기'와 같은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 미래 변화를 읽고, 그 변화의 길목을 지켜야 한다. 위기에 진짜 실력이 나오는 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길게 보는 안목이다.
해마다 단기 실적으로 평가받는 우리 기업문화에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이 왜 기존 비즈니스에 안주할 수밖에 없었는지 원인을 곰곰이 짚어볼 필요가 있다. 단기 성과와 효율만 따지는 풍토에선 좌우 눈을 가리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마장의 경마'만 있을 뿐이다. 좌우를 살피고 다가올 위험과 기회를 모두 살필 수 있는 시스템과 기업문화가 필요하다. 오너의 결단과 후원이 절실하다.
흉년 뒤 풍년에 웃는 탈레스는 누가 될까. 몇 년 뒤 재계 지도는 크게 바뀔 공산이 크다. 최악의 불황이 예고된 내년이 그 갈림길일 것이다.
장지영 부국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