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마이데이터 시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이 출발점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많은 사람이 과거 일상을 확인하기 위해 일기장을 들여다보던 시절이 있었다. 일기장은 영화를 보고, 공원을 가고, 옷을 산 나의 기록을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도구였다. 지금은 일기장 대신 데이터로 나의 하루가 기록된다. 24시간 휴대 가능한 고성능 ICT 기기인 스마트폰을 비롯해 데이터의 초고속 이동을 가능케 한 5G 등의 발전으로 내가 언제 일어났는지, 어디로 이동하는지, 무슨 영상을 보는지와 같은 우리 일상이 바로바로 데이터로 남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비대면 활동 증가 또한 이러한 일상의 데이터화를 더욱 촉진했다.

축적된 방대한 개인 데이터는 데이터 활용 기술 발전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자원으로 불린다. 활용 가치가 나날이 높아 가고 있는 데이터를 생성 주체인 우리는 얼마나 잘 쓰고 있을까. 내 데이터로 나는 얼마나 큰 효용을 얻고 있을까. 내 데이터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진 않을까.

마이데이터는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2018년에 시행된 유럽연합(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에서 데이터이동권을 규정함에 따라 세계적 논의가 촉발된 마이데이터는 개인에게 데이터이동권을 부여해서 자신의 데이터 제공과 이용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지금까지 개인이 대기업, 플랫폼 등 정보 보유기관의 필요에 따라 단순히 정보 제공에 동의하던 수동적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마이데이터를 통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나를 중심으로 이동시키고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정보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

[ET시론] 마이데이터 시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이 출발점

마이데이터가 구현되면 개인정보를 둘러싼 기존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다. 우선 정보 주체는 마이데이터를 통해 다양한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운동량, 식습관, 건강 상태 등 데이터를 모아 운동·식단 추천 등 맞춤형 건강 관리가 가능하다. 의류 구매 내역, 신체 조건 등 데이터를 통해 스타일 관리도 받을 수 있다. 국민 모두에게 최적의 조언을 하는 헬스트레이너, 스타일리스트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진로 결정, 거주지 선택, 주택 구입과 같은 삶의 중요한 의사결정에도 마이데이터의 도움을 받는 미래가 가능하다.

마이데이터의 산업적 중요성도 막대하다. 기업은 기존에 얻기 어려운 타 분야 데이터를 확보해서 혁신 서비스를 창출하고 새로운 영역에 진출할 수 있다. 마이데이터 제도가 제대로 구축되면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양질의 서비스 없이 기존 고객을 구속(Lock-in)하는 것이 어렵게 되는 한편 스타트업은 참신한 서비스만으로 고객 유치가 가능하게 돼 산업 전반의 서비스 경쟁을 활성화할 것이다.

공공 분야에서도 마이데이터는 큰 효용을 제공한다. 마이데이터를 통해 보건·복지 분야 등에서 국민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통찰을 얻어 재난·안전관리 등 잠재적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현재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디지털플랫폼정부 기능과도 일맥상통한다. 마이데이터는 디지털플랫폼정부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도 수행할 것이다.

이처럼 마이데이터가 가져올 미래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내 정보가 칸막이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마이데이터는 금융, 공공 등 한정된 분야에만 도입돼 있어 진정한 의미의 데이터이동권이 구현됐다고 보기 어렵다. 정보 주체가 자신의 정보 권리를 폭넓게 실현하고 기업이 분야 간 장벽에 가로막히지 않는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려면 개인정보가 흩어져 있는 모든 분야에 마이데이터가 도입돼야 한다. 이러한 전 분야 마이데이터 도입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분야별로 상이한 데이터 형식이나 전송규격 표준화, 정보 주체가 여러 분야의 데이터를 손쉽게 관리할 수 있는 지원 플랫폼 구축 등 다양한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이데이터를 전 분야에 도입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으로서 굳건하고 일관된 법체계 확립이 가장 중요한 선결 요건이다. 그래야만 정보 주체의 데이터이동권을 명확하게 보장하고, 각 분야의 데이터를 통일성 있게 표준화할 수 있으며, 마이데이터에 대한 일원화된 감독체계를 갖출 수 있다. 일관된 법체계 없이 각각의 분야에서 마이데이터를 추진할 경우 인적·물적 자원 중복에 따른 낭비가 생길 것이고, 마이데이터 확산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로 사회적 비용도 크게 증가할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마이데이터 도입을 위한 범정부 추진체계를 이끄는 컨트롤타워로서 전 분야 마이데이터에 대한 일반법인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법 개정을 통해 정보 주체가 자신의 데이터를 원활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개인정보 전송요구권'을 도입, 마이데이터의 일관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 국가 차원의 전 분야 마이데이터 도입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전인미답의 길인 만큼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통해 굳건한 제도적 기반을 쌓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개인정보보호위는 전 분야 마이데이터 도입을 향한 새로운 길 위에 급변하는 데이터 산업의 여러 이슈와 정보 주체, 데이터 보유기관, 잠재적인 마이데이터 사업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놓여 있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한 개인정보보호법은 마이데이터를 원칙 중심으로 규정해서 향후 데이터 산업 발전과 시장 변화에 맞춰 시행령 등을 통해 적시에 제도적 조정(Fine Tuning)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으며, 산업계 등 이해관계자 의견을 지속 수렴해서 하위 법령을 마련하는 등 단계적으로 마이데이터를 확대하며 시장 수용성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전 분야 마이데이터 도입을 통한 새로운 데이터 생태계 구축은 국민 편익을 제고하고 산업 효율성을 높여 우리나라가 세계적 데이터 선도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디지털 대전환으로 글로벌 데이터 시장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는 지금 실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 분야 마이데이터 도입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지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의 첫 성과가 바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통과가 될 것이라 믿는다.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haksooko@korea.kr

〈필자〉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JD)과 경제학과(Ph D)에서 각각 학위를 받았다. 이어 연세대 법대에 재직하고, 컬럼비아대·싱가포르국립대·함부르크대에서 강의했다. 2007년부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법경제학, 개인정보보호, 인공지능, 빅데이터, IT 정책 등 영역에 관해 연구하고 강의했다. 아시아법경제학회 회장, 한국인공지능법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10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장관급)에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