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제4차 연구실안전 기본계획에 대한 기대

[기고]제4차 연구실안전 기본계획에 대한 기대

[기고]제4차 연구실안전 기본계획에 대한 기대

독일 식물학자 유스투스 리비히(Justus von Liebig)는 작물이 정상적으로 생육하기 위해서는 필수 영양분이 적정한 비율로 존재해야 하는데 이들 필수 영양분 가운데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작물의 생육은 부족한 필수 양분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리비히 법칙이라고 한다. 이는 여러 개의 나무판을 잇대어 만든 나무 물통에 채워지는 물의 양은 가장 낮은 나무판자의 높이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나무 물통 법칙과 같은 이치다.

이 이론은 안전관리에도 적용된다. 세상을 안전하게 하려면 세상에 존재하는 위험 요인을 찾아내고, 그 위험이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때 관리 요소로는 기계 기구 설비와 같은 하드웨어, 하드웨어의 작동과 관계가 있는 소프트웨어, 환경 및 인적 요인, 관리 방안 등이 있다. 이러한 모든 관리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관리를 소홀히 하거나 잘못하면 안전관리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지난달 발생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이태원 참사도 우리 사회에서 지키고 관리해야 하는 요소 가운데 일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연구실 사고도 이러한 각도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200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 사망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연구실 안전은 대형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업 현장에 비해 사회적 관심이 낮은 영역이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2005년 연구실안전법이 제정됐고, 정부와 연구계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연구 현장의 안전 수준이 조금씩 개선됐다. 처음 제정된 연구실 안전법으로 연구실을 설치운영하는 기준이 개발보급됐고, 정밀안전진단 대행 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 위험 요인을 사전 점검하고 제거할 수 있게 됐다. 또 연구실마다 안전관리를 전담하는 인력을 둘 수 있게 됐다. 한편으로는 연구자들의 안전의식을 높이기 위해 상위 관리자 대상으로 안전 인식 개선을 꾸준히 진행, 자율적 안전관리 체계 전환의 발판을 마련했다. 2020년에는 연구실안전법을 전부 개정하여 국가전문자격인 '연구실안전관리사' 제도를 신설해서 전문성을 높였고, 연구실 내 안전 확보를 위해 의무적으로 안전보호구를 비치하고 착용하도록 하고, 안전정보 공표제도를 도입했다. 또 최초로 전국의 모든 연구실 대상으로 유해 인자를 전수 조사, 연구자에게 사고 예방을 위한 맞춤형 안전 정보를 제공하는 기반을 구축했다.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적극 행정으로 사고 처리에 대한 법적 문제도 대대적으로 보완했다. 사고 때마다 문제로 지적된 연구실 사고보상 체계를 개선, 학생 연구자가 산재보험을 적용받도록 했다. 연구실 안전보험의 치료비 보상 한도를 기존 1억원에서 20억원으로 대폭 상향하는 등 연구자가 안심하고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안전한 연구 환경 조성 노력을 많이 했다.

정부는 올해로 종료되는 3차 기본계획의 후속으로 연구실 안전관리 기본방향을 담을 4차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이번 기본계획이 이전의 개정 때처럼 실질적인 연구실 안전관리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학계산업계연구계가 협력해서 뜻을 모으고 정부 또한 연구 현장에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고, 그동안의 성과 분석을 통해 연구실 안전관리 정책이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는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 청년 연구자와 과학기술인의 희생이 있었다. 어려운 여건에도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위해 힘쓰는 연구자들을 마룻대와 들보로 쓸 중요한 동량지기(棟梁之器)라 생각하고 연구실 안전에 우리 모두의 관심과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이영순 재단법인 피플 이사장 lysoon@seoul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