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40>경쟁을 와해하는 혁신

와해(瓦解). 기와 '와'에 풀다는 의미의 '해' 자를 썼다. 이 가운데 해 자를 파자해 보면 흥미로운 게 보인다. 뿔 '각' 변에 칼 '도'를 소 '우' 위에 씌웠다. 문제를 풀어헤쳐서 풀이를 찾는다는 의미가 이 모양새만 봐도 드러난다.

이에 더하여 마치 기와가 산산이 부서져서 파편이 된 것처럼 조직이나 계획 따위를 산산이 무너뜨리거나 흩어진 걸 나타낸다는 의미도 보인다. 그리고 이건 disruptive란 단어도 떠올리게 한다. 영어사전은 이를 분열, 붕괴, 파괴로 번역한다. 그런데 어느 누군가는 이것을 와해라고 풀었다. 그리고 우린 이 감흥 넘치는 선택으로 혁신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됐다.

혁신엔 수많은 목표가 있다. 비록 경중을 따질 수는 없겠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정수를 고르라 한다면 그건 경쟁을 무의미하게 하는 그런 혁신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 입에 회자될 걸 염두에 두고 용어를 만드는 게 꼭 바람직한 건 아니겠지만 굳이 하나 만든다면 '경쟁와해혁신'이라 부를 법도 하다. 그리고 기업혁신사에는 이런 성공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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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아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서비스 방식은 고전에 해당한다. GE는 항공엔진, 부품,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었다. 원체 과점사업이니 꽤 수지맞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전문기업들이 하나둘 늘면서 점점 가격 경쟁이 심해졌다. 이때 GE는 온포인트(OnPoint)란 서비스 모델을 출시한다. 이제 항공사는 엔진을 사는 대신 비행시간만큼 비용을 지불하게 됐다. 그러자 부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과 차별화됐고, 경쟁과는 무관해졌다.

다른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날코(Nalco)는 지금 물·에너지·공기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날코란 사명은 내셔널 알루미네이트 코퍼레이션이란 원래 사명에서 따왔다.

날코 제품 가운데에는 수처리용 화합물이 있었다. 매출은 여전히 괜찮았지만 경쟁 탓에 가격 압박이 점차 심해졌다. 날코는 고객사에 설치된 공급 탱크에 모니터를 설치하기로 한다. 소모량을 읽어 제때 서비스하자는 목적이었다. 그리고 이건 훌륭하게 목적을 달성한다. 거기다 배송 비용까지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날코 관리자가 화합물 소모율을 고객사의 생산량과 비교하다가 원료가 너무 많이 소모된다는 걸 알게 된다. 알고 보니 제조 시스템이 오작동되고 있었다. 날코가 납품한 건 제조비용의 작은 일부일 뿐이었지만 공정 개선은 큰 사안이었다. 그러니 날코는 제조사에 중요한 파트너가 된 셈이었고, 이런 관계는 상승작용을 했다.

결과적으로 고객사의 화합물 탱크에 모니터를 달아서 얻은 결과 자체만으로도 바랄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부터 시작된 관리 솔루션은 경쟁기업이 극복할 수 없는 우위가 되었고, 가격 전쟁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요즘 타이어를 팔지 않는 타이어 제조사나 건설 공구를 팔지 않는 공구사는 흔한 사례다. 그런데 많은 기업이 이 정도 따라 하고 혁신을 다 한 것처럼 군다. 하지만 어느 혁신이 그렇듯 혁신이 이 정도 쓸모밖에 없겠나.

한번 혁신이란 도구를 당신을 가장 오랫동안 괴롭혀 온 문제 해결에 써 보라. 단지 완화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뒤집는 데 목적을 둬 보라. 그럼 혁신은 거기로 향하는 바른 통로를 보여 줄 것이다.

당신이 분명 문제를 와해하고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면 누구도 밟지 않은 더 넓은 푸른 방목지가 거기 있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40>경쟁을 와해하는 혁신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