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으로 시작된 통상 분쟁의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기술패권 경쟁으로 변모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보유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하고, 미국 역시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경쟁국을 견제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요국은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공급망 문제 극복을 위해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첨단기술 중심의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더욱이 첨단기술은 민·군 겸용기술인 경우가 많은 만큼 경제와 안보 모두에서 핵심 이슈로 대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 이러한 기술패권 경쟁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 정답은 분명하다. 비록 상대적으로 한정된 자원의 제약이 있지만 이것을 극복하고 국익에 필요한 기술 확보 전략을 수립하고 대응해 나가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과 미래 산업 및 기술 수요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경제, 외교·안보, 신산업 등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할 기술을 선별하고 육성하기 위한 국가적 체계를 구축해야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중·장기 관점에서 치밀한 목표와 전략이 수립되어야 하며, 전략기술 연구개발사업의 투자를 꾸준히 확대하는 한편 전략기술 확보 정도를 철저하리만큼 점검해 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안으로는 우수 인력 확보와 산·학·연 간 협력, 국제적으로는 전략국가와의 협력 강화에 국가의 온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또 이 같은 육성 전략이 체계적으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인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무리 목표와 전략이 훌륭하게 설정되고 수립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기반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으면 결국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요국 역시 핵심기술을 선별해서 투자를 확대하며 전략기술 육성을 가속화하기 위해 관련 조직을 신설하고 법적 기반을 마련한 바 있다. 미국은 지난 8월 반도체 산업과 첨단기술, 기초과학을 지원에 관한 법안을 묶은 '반도체와 과학법'을 통과시켰다. 반도체 산업에 약 67조원(520억달러), AI·양자 등 핵심 기술개발에 약 261조원(2000억달러)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일본도 이보다 앞선 5월 특정 중요 기술에 대한 연구자금을 지원하고, 민간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했다.
우리 역시 올해 초 반도체 산업 등의 공급망 안정화와 기술 보호를 위해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전략기술 육성 법안은 아직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술패권 경쟁 시대를 맞았다. 이미 해외 주요국은 전략기술 육성을 위해 한발 앞서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미래 기술주권 확보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 첨단전략 기술 협력을 공고히 했고, 지난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양자·AI 등 12대 전략기술을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함께 '국가전략기술육성특별법' 제정 등 법제화와 적극적인 육성 의지를 표명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국가의 R&D가 100조원 시대에 들어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 주요국과 경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는 민·관 구분없이 국가적 역량을 모아 초격차 전략기술을 육성해야 하겠다. 이것만이 G5 과학기술 강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박재민 건국대 교수·ET대학포럼 좌장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