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현 교수의 글로벌 미디어 이해하기]〈69〉컴캐스트는 유료방송을 포기하나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비즈니스에서 자기잠식효과(Cannibalization Effect)라는 게 있다. 특정 기업의 탁월한 신상품이 해당 기업에서 먼저 출시한 동일 계열 상품이 점유한 시장을 잠식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미디어산업에서도 자기잠식효과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기존 콘텐츠 사업자가 케이블TV 등 유료방송을 거치지 않고 스트리밍 방식으로 직접 고객에게 자사 콘텐츠를 제공하는 게 대세로 자리를 잡아 가면서 이 같은 논의가 활발하다. 유료방송을 통해 콘텐츠를 전송하게 되면 유료방송 가입자로부터 받은 수신료의 일부와 광고가 주 수입원이지만 스트리밍 방식이 확장되면 고객으로부터 수신료를 직접 받기 때문에 수입 구조원에서 변동이 생기기 때문이다.

월트디즈니의 경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를 출시하면서 기존 유료방송사업자에 공급하던 채널을 축소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채널을 폐지하기도 했다. 이때 논의의 중심은 채널 폐지나 축소로 인한 손해를 디즈니+로 언제 만회하는가였다. 넷플릭스는 순수 가입자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최근 광고 기반 모델도 함께 출시했다. 기존 가입자 가운데 얼마나 많은 가입자가 광고 기반으로 이동할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역시 자기잠식효과의 영향력 분석이다.

위성방송인 DirecTV가 자사 가입자 감소를 만회하면서 스트리밍이 대세인 시장에 부응하기 위해 이른바 가상 유료방송서비스(vMVPD)를 저가로 제공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상대로 상당수 가입자가 고가의 위성방송에서 저가의 vMVPD로 갈아타는 자기잠식효과가 발생했다.

'컴캐스트가 결국 유료방송을 포기하는가?'는 언론 기사 제목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컴캐스트 자회사이자 미국 지상파방송인 NBC유니버설은 제휴한 210개 지역방송사 지역뉴스, 쇼와 프로그램을 '피콕 프리미엄+' 서비스에 포함해 스트리밍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스트리밍 서비스 투자로 지난 3분기 EBITDA가 마이너스 6억달러 이상이었다는 발표와 맞물려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컴캐스트가 기존 유료방송 생태계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게 된 것이다.

케이블TV사업자 입장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매년 10.5% 가입자가 축소되는 상황에 가중해서 기존 케이블TV 가입자에게 해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강력한 이유를 제공하는 게 된다. 고가의 케이블TV 가입자가 저가의 스트리밍으로 이동하는 자기잠식효과가 생길 여지가 있다.

피콕은 두 가지 티어, 즉 9.99달러 광고 없는 프리미엄+와 4.99달러 광고 기반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한다. 티어별 정확한 가입자 수를 발표하지 않기 때문에 가입자 대부분이 저가 서비스를 구독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지역 지상파방송을 지상파 안테나로 시청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피콕 프리미엄+가 가장 저렴하다. 지역방송사 프로그램을 프리미엄+에 포함시키기 때문에 저가의 구독자가 고가로 이동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피콕 가입자 모두가 지상파 프로그램을 방영한 이튿날 주문형비디오(VoD)로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업세일링 효과에 대한 이론의 여지가 있다.

컴캐스트가 이 같은 전략의 효과와 결과를 어떻게 예측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기잠식효과를 넘어 유료방송 생태계를 혼란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모든 유료방송업계는 지금 혼돈과 혼란 속에 있다. 수년 전 인터넷 가입자가 방송 가입자를 추월하면서 컴캐스트가 이제는 더 이상 방송사업자가 아닌 브로드밴드 회사라고 선언한 적이 있었다. 디즈니가 디즈니+로 스트리밍 서비스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 등을 보면서 이제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나 IPTV, 케이블TV 사업자도 기존 유료방송 틀을 포기하고 다른 모양으로 변화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