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장은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지만 부처 행정은 구분돼 있다”며 “변화하는 지식재산 환경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러나 당장 지식재산 거버넌스 개편 등을 논의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지식재산위원회가 부처 간 틈을 메우고 지식재산의 경계가 사라지는 환경에 대응하는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백 위원장은 22일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24일 취임 이후 첫 인터뷰다.
'미스터 특허' 백만기 변리사가 다시 정부로 돌아왔다. 6기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장으로 지식재산 생태계 혁신 선봉에 선다. 지식재산 분야에서 45년을 종사한 그에게 기대가 쏟아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IP 빅5'로 불리는 우리나라지만 지식재산 저평가, 이로 인한 국내 소송 기피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백 위원장은 취임 직후 지식재산위원회 실무 조직, 지식재산지원단으로 업무보고를 받고 곧바로 업무에 돌입했다.
백 위원장은 급변하는 지식재산 환경에 부합하는 정부 대응 체계 구축을 현안으로 손꼽았다고 한다. 백 위원장은 인공지능(AI)과 메타버스가 산업 깊숙이 자리하면서 창작물의 저작권과 산업재산권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파악했다. 특허 등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의 주관 부처를 구분한 현재 행정체계로 대응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판단이다.
백 위원장은 지식재산위원회의 핵심 역할을 여기서 찾았다. 그는 “산업재산권, 저작권이 융합되고 거버넌스도 이에 맞춰 변화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지식재산위원회가 중심에서 문제를 조화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가교, 중심 역할을 하면서 거버넌스 공백을 메우겠다”고 역설했다.
국내 특허 소송 환경의 혁신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한국은 미국, 일본 등과 함께 'IP 빅5' 반열에 올랐지만 특허 소송과 관련해 대다수 기업이 국내 소송을 기피한다. 침해 소송에서 승소해도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백 위원장은 “우리 기업 대다수가 미국 등 해외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현실”이라며 “우리나라 지식재산 소송의 전문화가 부족한 까닭”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필요하다면 관련법 제정을 추진해 지식재산을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고 의지를 내비쳤다.
최근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폐지, 총리실 이관 등이 추진되는 가운데 지식재산위원회의 위상 약화를 우려하는 지적과 관련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그는 “지식재산위원회 출범 당시 대통령 참여 등으로 탄력을 받았지만 이후 관심에서 멀어진 측면이 있다”고 전제했지만 “현 정부의 관심은 작지 않다”고 단언했다.
백 위원장은 “공동 위원장인 한덕수 국무총리, 대통령실 최상목 경제수석비서관 등이 모두 지식재산에 큰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며 “역대 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특허청에서 행정관이 대통령실에 파견돼 현안을 챙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 위원장은 “앞서 지식재산위원회가 국가 지식재산 5개년 계획 등으로 전체 틀을 잘 짜놓은 상태”라면서 “6기 위원회는 5개년 계획을 이행하는 액션 프로그램 중심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위원회가 전문성을 갖고 막힌 곳을 뚫되 부처가 빛을 받을 수 있도록 일하겠다”며 “뚜렷한 성과를 하나라도 내는 것이 목표”라고 희망했다.
지식재산위원위는 2011년 4월 지식재산 기본법 제정으로 출범한 지식재산컨트롤타워다. 과학·기술 분야의 특허, 문화·예술·콘텐츠 저작권 등 지식재산을 창출·활용하기 위한 국가 전략을 수립한다. 국무총리, 민간 전문가 공동 위원장 체제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식재산위원회 수장으로 인선된 소감은
▲특허청 설립 직후 심사관으로 지식재산과 인연 맺은지 45년이 지났다. 정부에서 21년, 민간에서 24년째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45년간 IP 역사를 민·관 부문에서 경험했다. 오랜 시간 역사와 대화하며 이젠 우리나라 지식재산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왔다. 마지막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영광스럽다. 멋진 마무리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기 지식재산위원회의 방향성에 대해 얘기해 달라.
▲마침 오늘 업무보고와 업무지시가 있었다. 거기서 나눈 얘기로 대답이 될 것 같다. 이건 처음 공개하는 6기 지식재산위원회 업무 계획으로, 신선할 것 같다. (웃음)
위원회 미션은 지식재산 성장의 엔진 역할이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지식재산 생태계를 만드는 일, 젊은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멋진 지식 강국을 만드는 게 미션이자 비전이다. 이제는 이행에 나서려 한다. 위원회가 설립된지 12년이 지났고 국가지식재산기본계획(5개년)이 두 번 수립됐다. 내년부터는 액션 프로그램에 들어가겠다. 지식재산이 연구개발(R&D) 결과물이라고만 생각할 게 아니라 생태계의 핵심 플랫폼, 즉 금융, 사업화, 거래와 연결되는 거대한 생태계를 완성시키는데 일조하고 싶다.
-구체적 구상을 듣고 싶다.
▲저작권은 4차산업혁명시대의 핵심 지식재산권이다. 최근 상황을 보면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AI, 메타버스 등에서 나오는 창작물의 저작권 문제 등이 심심찮게 거론된다. 그러나 우리 행정체계는 완전히 구분돼 있다. 지재위가 중간에서 조정·융합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특허소송 문제 해결도 주요 과제다. 우리 소송체계가 관할집중된 뒤로 변화가 없다. 우리나라를 IP 허브라고 일컫지만, 소송 측면에선 외면당하고 있다. 한국기업조차 미국, 유럽에서 소송한다. 이것은 우리 IP 소송의 전문성과도 관련이 깊다. 이 또한 지식재산 생태계의 건정성, 활기와 연관된다. 정당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입법도 지원하려 한다.
또 하나는 지식재산 외교력 강화다. 우리나라가 지식재산 5대 강국이 됐지만 이에 걸맞는 외교 능력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수장을 배출하고 세계가 주목할 지식재산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대외 성과를 내보고 싶다.
-특허소송 전문성을 언급했다. 변리사의 특허소송대리 관련 법안이 발의됐는데 이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이 문제는 세 가지 원칙에서 논의해야 한다. 첫째, 세계 흐름에 맞춰 가고 있는가. 둘째, 법률 수요자인 우리나라 산업계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는 대안인가. 셋째, 법률체계에 부합하는가다. 이 관점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
-지재위를 비롯해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총리실로 이관될 예정이다. 위상 약화 우려가 나온다.
▲위원회는 법률, 제도적으로 힘이 있으면 위상이 높다.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전문성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당장은 그런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지재위가 전문성을 발휘하면 위상은 자연스레 올라갈 것으로 본다. 원칙은 간단하다. 전문성을 갖고 일하되 빛은 부처가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지식재산기본계획을 잘 수립했으니 이번엔 액션 프로그램 위주로 업무를 진행할 것이다.
-공동 위원장인 한덕수 총리와의 호흡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과거 부처 시절부터 국·과장으로 연을 맺었다. 한 총리는 정책 마인드가 뛰어나신 분으로 지식재산위원회를 잘 끌어보자고 말씀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대통령실 경제 수석도 지식재산 경쟁력 제고를 강조하고 있다. 환경은 오히려 어느 때보다 좋다.
-민·관 지식재산 분야에서 40여년 이상 몸담았다. 위원회를 이끄는데 이 경험이 어떻게 쓰일지 궁금하다.
▲정부 업무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만드는데 특화돼 있다. 또, 정부 차원의 결심을 얻어내는 노하우, 이건 굉장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민간분야에서는 매일같이 산업계의 현실을 봤다. 기업 시각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골프에 비유하자면 굵직한 정책을 만드는 공직은 드라이버를 잘 치는 것이 중요하고 민간에선 디테일, 즉 퍼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독자에게 각오를 전한다면
▲지식재산이라고 말하면 사실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지식재산을 창의성 있는 지식이라고 설명한다. 그것이 법적으로 등록되면 지식재산이 된다.
우리나라가 인구감소 등 현실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은 결국 지식재산의 확보다. 대한민국이 창의성이 가득하고 멋진 지식강국이 되는 게 비전이자 목표다. '멋진'의 의미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결합을 의미한다. 문화·예술적 파워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구현하는 데 힘을 쓰겠다.
부처가 지식재산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전체를 묶는 밴드 역할을 해 국가 지식재산의 총량을 늘리는데 기여하겠다.
또 다른 목표는 향토지식재산의 발굴이다. 각 지역의 문화, 노하우 등 다양한 측면에서 지식재산화할 수 있는 자산이 많다. 하다못해 장을 담그는 비법에도 숨어있을 수 있다. 이런 것을 모아 빅데이터화하고 산업화로 연결하면 4차산업 새마을 운동이 될 수 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
◆백만기 위원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전자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MBA)을 공부했다. 특허청 심사관으로 공직을 시작해 특허청 전자심사담당관, 청와대 전산망조정위 과장, 특허청 전산과장, 상공부 정보기기과장·정보진흥과장·반도체산업과장·산업기술정책과장, 특허청 심판관,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 특허청 심사4국장 등을 역임했다.
반도체 산업정책을 담당할 당시, 미국 기업이 한국의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반덤핑 소송을 내자 전담반을 맡아 미국 상무부로부터 반덤핑 관세 철회를 이끌어냈다.
한국지식재산서비스협회의 창립부터 12년 이상 협회를 이끌었으며 산업통상자원부 R&D 전략기획단장을 역임했다. 현재 김&장 법률사무소 변리사로 활동중이다. 국무총리 표창과 중소기업 특별위원장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