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탄생과 관련해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행성충동설이다. 즉 지구가 우주의 다른 행성과 충돌해서 둘로 쪼개졌고, 이것이 현재의 달이라는 것이다. 성경에도 유사한 표현이 있다. 창세기 1장 7절에는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궁창(히브리어 라키야)이란 하늘을 말하고 지구는 오래 전부터 물의 행성으로 불리던 곳이다. 어찌됐든 이런 큰 충돌을 자이언트 임팩트라고 한다.
최근 경제가 심상찮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금리가 오르며, 돈을 벌어 이자도 못 내는 기업이 수두룩하다. 한국은행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이자보상배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업이 44%를 넘는다. 상장사도 예외가 아니다. 중소 상장기업의 25%가 이자도 못 내는 좀비기업다. 남의 불행은 누군가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바로 M&A다. 앞으로 몇 년 동안 M&A의 큰 장이 설 것이며, 이는 자이언트 임팩트에 버금가는 큰 충격일 것이다. '불황일 때 투자하라'는 동서고금의 진리다. M&A는 말 그대로 인수(acquisitions)와 합병(mergers)이다. 즉 몸짓 키우기로 덧셈에 비유할 수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국내 기업의 M&A 목적은 약 80%가 이러한 확장전략이다. 현대의 M&A는 변했다. 기업 또는 자산을 사고(acquisitions) 팔고(sales) 나누고(spin-offs) 합치는(mergers) 모든 거래로 확장됐다. 즉 지배권의 변동을 초래하는 모든 트랜잭션으로 뺄셈이 추가됐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완벽함'이란 더이상 보탤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이상 뺄 것이 없을 때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업그레이드란 빼는 것이다.
내면보다 외모에 더 집착(執着)하는 삶은 알맹이보다 포장지가 비싼 물건과 같다. 즉 M&A가 겉멋에 빠질 때 회사는 망한다. 동서양 철학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바로 중용(中庸)이다. 이름만 들어도 고리타분한 소크라테스 행복론은 결국 중용으로 귀결되는데 이걸 풀어 보면 “어느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조화로운 삶”이다. 이 말을 기업에 비유해 보자. 덧셈(growth)과 뺄셈(restructure)이 조화롭게 교차하면 기업은 행복하다.
1988년은 올림픽이 개최된 해였다. 군복무를 마친 필자는 복학을 포기하고 창업했다. 당시는 PC가 막 보급되던 시기로 데이터베이스 설계사업은 승승장구했고, 1999년에 상장했다. 이후 2000년 들어 공격적인 M&A에 나서며 4개 코스닥 기업을 인수했고, 회사는 뻥튀기처럼 커졌다. 2010년께는 계열사 7곳에 외형은 5300억원, 시가 총액은 1조원을 넘겼다. 특히 2006년에 인수해서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던 마스터 이미지(Master Image)의 밸류에이션은 5억달러에 달했다. 한편 필자는 2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 가운데 한 권이 2015년에 출간한 '인생은 뺄셈, 행복은 곱셈이다'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뺄셈으로 시작한다. 제목부터가 “진정한 고수는 뺄셈의 달인이다”다. 시장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 즉 수요와 공급에 의해 조화로운 자원 배분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앞에 '자유'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시장은 금수(禽獸)의 세상이 된다. 악착같이 빼앗고, 쌓아서 기업의 덩치를 키운다. 경영자는 당연히 덧셈에 몰두한다. 더 많은 매출, 더 큰 명성을 얻으려고 무리한 사업 확장, 계열사 늘리기, 무분별한 M&A에 몰두한다. 하지만 결론은 뭔가? 지옥을 경험할 뿐이다. 우리 주변에는 덧셈으로 폭망한 많은 기업을 볼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세일러는 이를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 했다.
20여년 동안 M&A를 해 오면서 지켜 온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시너지이고 둘째는 더하기 전 반드시 뺀다이다. 시너지란 여럿이 모여 더 큰 힘을 낸다는 것으로, 어떤 상승 작용의 결과가 피드백되며 재상승을 반복하는 것이다. 시너지 없는 M&A는 탐욕에 불과하다. 한편 누구에게나 그릇이 있다. 그래서 담을 양은 정해져 있고, 무엇을 담을지만 결정할 수 있다. 이 무엇은 당연히 유익한 것이어야 할 것이고, 새로운 것을 담기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덜어내야 한다. 기업에 비유하면 비전 없는 사업, 시너지 없는 사업 등일 것이다. 30여년 동안 기업인으로 살면서 그나마 작은 성취를 이룬 것은 뺄셈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 빼기에 실패한 걸 뺀다면 나름 중용의 삶을 산 것이다.
기업경영은 피아노와 같은 것이다. 흰 건반은 덧셈이고 검은 건반은 뺄셈이다. 두 가지 건반을 모두 사용하지 않으면 멋진 연주가 될 수 없다. 덧셈의 성공법은 없다. 진정한 고수는 뺄셈의 달인이다. 뺄셈에 집중하면 행복은 덧셈되고, 곱셈의 놀라운 기적까지 맛볼 수 있다.
김태섭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tskim2324@naver.com
[필자소개] 1988년 대학시절 창업한 국내 대표 ICT경영인이다. 바른전자 포함 4개 코스닥 기업을 경영했고 시가총액 1조원의 벤처신화를 이루기도 했다. 반도체, 컴퓨터, 네트워크 SI 등 전문가로 그가 저술한 '규석기시대의 반도체'는 대학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상장사 M&A 플랫폼인 피봇브릿지의 대표 컨설턴트이며,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 고문, (사)한국M&A투자협회 부회장 등을 겸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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