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애초 말했던 것처럼 과학기술을 신경 쓰고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상황은 계속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한 과기계 관계자의 말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첫해가 끝나가는 가운데, 정부에 대한 과기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애초 과기 선도국가를 목표로 삼는다는 선언이 있었지만, 실제 관심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대표 사례가 국가 연구개발(R&D) 핵심 역할을 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기관장 선임 관련 내용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8개월여,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이 7개월 넘게 새로운 수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ETRI, 원자력연의 경우 지난 3월 말에 원장 임기가 만료됐다.
임기가 자동 연장돼 원장 공석은 아니지만,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언제 자리를 내줘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굵직한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뒤늦게서야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9월 말 각 기관의 원장 후보자 3배수가 도출됐지만, 두 달 넘게 최종 선임이 이뤄지지 않았다. 오는 13일에야 선임안건이 논의될 예정이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기관장 임기 4분의 1가량 기간이 리더십 없이 흘러간 셈”이라며 “ETRI, 원자력연 등 규모와 역할이 큰 출연연 기관이 이런 상황이란 것이 특히 큰 문제로, 정부가 관심은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정부 들어 도리어 과기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었다. 정부가 비효율적인 공공기관을 혁신한다는 명목으로 추진하는 정책에 출연연을 비롯한 연구 현장이 휘말렸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 말 전 부처 공공기관에 '생산성 효율성 제고를 위한 새 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전달, △기능 △조직·인력 △예산 △자산 △복리후생 등의 축소를 요구했다. 지금은 개별 연구기관과의 세부적 내용 조율까지 어느 정도 이뤄진 단계다.
문제는 다른 공공기관과 과기분야 기관을 같은 선상에서 보기 어려움에도, 특수성 반영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례로 한 출연연은 정부 등쌀에 이미 출자회사 정리를 준비하고 있다. 출연연 출자회사는 곧 연구소기업이다.
지난달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비롯한 과기원 예산을 기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교육부로 이관하는 안이 추진돼 논란이 일었다.
기재부는 이후 더 많은 예산이 과기원에 갈 것이라는 논리였지만 과기계에서는 일반대학과의 예산 수급 경쟁, 교육부 통제 등을 이유로 경쟁력 하락이 예상된다고 봤다.
한 과기계 관계자는 “연구 현장을 투자해야 할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보지 않고, 숫자로만 보면 생길 수 있는 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일각에서는 '조금 기다려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과기계 숙원이던 블라인드 채용 폐지를 이번 정부가 발표하는 등 과기계를 위하는 의지는 명확하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이우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과총 회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기조가 바뀌는 것을 느끼려면 두고 봐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 좋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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