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철이지만 어느 곳에도 '승진잔치'를 찾아볼 수 없다. 최초 30대 임원, 여성 임원 이름만 부각될 뿐이다. 승진 임원 수를 비교하면 지난해 수준이거나 승진 규모가 외려 줄었다. 1960년대생은 이미 원로가 됐고, 젊은 임원으로 교체됐다. 이례적으로 올해 최대 매출을 낸 한 대기업의 부품 계열사도 결국 지난해 수준의 승진 인사를 냈다. 수익을 가장 많이 냈다고 평가받은 핵심 사업부장도 교체됐다. 내년 상황을 감안한 절박한 위기의식이 반영됐다.
'비용 절감'도 기업의 화두다. 해외 출장 빈도를 줄이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연말까지 허리띠를 졸라맨 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며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쁘다. 사실상 '비상경영'이다. 내년도 사업을 계획하는 포부와 희망보다는 현상 유지라도 해야 한다는 소극적 자세와 분위기가 팽배하다. 시장조사 전문업체와 전문가들이 내년 상반기까지 정보기술(IT) 분야의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기업들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을 둘러싼 상황은 대체로 어렵지만 '꺾이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글로벌 핵심 고객사를 만나고 돌아온 소감을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했다. 시장 상황이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기술 투자와 핵심 인력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전사적으로 비용 절감에 혈안인 회사에서 혁신기술이 등장하긴 어렵다. 우수 인력 확보도 요원하다. 모두 자기 자리 지키기에 급급해 보수적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다. 위기와 침체에도 기회는 분명히 있다. 과감한 기술 투자와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올 한 해 IT 수요가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대체될 수 없는 기술과 부품을 보유한 기업은 흔들림 없이 사상 최대 수익을 냈다. 고객사 점유율이 높아진 데다 기술 프리미엄까지 인정받아 승승장구했다. 한국 기업이 가장 잘하는 것이 세계적 수준의 기술 개발과 부품 생산이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미래 전략과 비전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국내 한 중견 장비 기업은 최근 글로벌 저궤도 위성 기업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게 됐다. 철옹성 같은 기술 장벽을 쌓아서 다른 기업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기술을 확보해 낸 결과가 열매를 맺었다. 기약 없는 막대한 투자가 수반됐지만 끊임없는 신사업 개척과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결국 성과를 낸 것이다. 카타르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이 얻은 가장 큰 교훈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대내외 경기 상황은 꺾이지만 기업의 미래를 위한 성장과 투자의 마음이 꺾여선 안 된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