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대금 정산 주기를 늘린 것은 현금흐름을 개선하고 차입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다. 납품대금 지급 기한이 길어지면 쿠팡 입장에서는 유동성 확보와 자금시장 경색에 대응이 용이해진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한 쿠팡Inc의 올해(1~3분기) 영업활동현금흐름은 마이너스(-) 1503만7000달러다. 현금 유입이 늘며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92.8% 축소됐지만 흑자 전환에도 현금흐름은 양수전환을 이루지 못했다. 이는 매입채무(외상매입금)가 줄어든 영향도 있다. 이 기간 쿠팡 매입채무는 1억6351만달러로 작년 동기 5억6152만달러에 비해 70% 감소했다. 매입채무는 물건을 납품받고 아직 대금을 치르지 않은 미지급금이다. 매입채무 상환 시기가 늦어지면 현금흐름에 보탬이 되는 구조다.
쿠팡은 흑자에 이어 영업활동으로 창출한 현금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신사업 투자를 지속하는 상황에서 투자금을 차입에만 의존할 경우 상당한 이자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올해 고금리로 부담이 더 커졌다. 금융비용 경감을 위해서는 유동성을 확대, 차입금 규모를 줄여야 한다.
문제는 쿠팡의 계약 변경이 상생결제와 빠른정산 등 정산 주기 단축을 통해 중소상공인 지원에 나선 정부 정책과 역행한다는 점이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는 제조업 중심으로 운영되던 상생결제 혜택을 유통업계에 적용하는 '유통망 상생결제'를 최초로 도입했다. 유통망 상생결제는 유통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들이 판매대금을 받기 전에도 현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중기부가 상생결제 지급방식을 개선한 대금 지급 수단이다. 네이버, 11번가 등 다른 e커머스도 협력사 자금 운용을 돕기 위한 익일 정산 등 빠른 정산 시스템을 잇달아 내놨다. 국회에서는 판매대금 지급 기한을 최대 30일로 제한하자는 '정산기한 단축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쿠팡의 경우 직매입 구조 특성상 위탁거래가 중심인 오픈마켓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같은 직매입 사업인 11번가 슈팅배송과 SSG닷컴 쓱배송의 경우 정산 기한이 입고일로부터 최대 40일로 쿠팡보다 짧다. 법정 대금지급 기한은 60일이지만 대부분 업체가 통상 40일 이내에 지급한다. 지급 기한을 2개월로 잡은 곳은 쿠팡과 컬리 정도다.
거래액 규모가 압도적인 쿠팡의 경우 정산주기가 늦어질수록 막대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해 금융수익도 거둘 수 있다. 향후에는 쿠팡파이낸셜을 통해 운전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선정산 대출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쿠팡 측은 “대규모유통업법을 비롯한 공정거래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이번 지급기한 변경은 지급 조건을 법 규정에 맞추기 위함”이라면서 “소상공인과의 동반성장을 위한 노력과 지원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번 계약 변경도 거래 파트너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상생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표>쿠팡 외상매입 현황(자료=미국증권거래위원회, 단위=달러)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