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이 에너지 분야의 최우선 화두가 된 이후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에너지 공급 부문에서 핵심 축을 담당해 온 발전산업은 신재생에너지, 원자력에너지 등의 무탄소 전원을 이용해 탄소중립으로 향해 가고 있다. 이에 반해 에너지 수요 부문의 탄소중립 전력으로는 전기화(電氣化·electrification) 또는 전전화(全電化·all electric)가 핵심이다. 대표적으로 전기자동차의 보급 확산은 이러한 방향이 대세임을 알려주고 있으나 열에너지 수요가 많은 건물과 산업 부문에서는 그 과정이 단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열에너지는 전기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이 활용해 온 에너지로, 대부분 불을 이용해 왔다. 열에너지의 전기화도 열 공급 방식을 전열기와 같은 수단으로 바꾸면 쉽게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양은 단순히 열과 전기를 등가화하는 열역학 1법칙(에너지 보존법칙)을 쓰면 된다.
그러나 전기에너지와 달리 열에너지는 열역학 2법칙(엔트로피 법칙)에 기반해 온도에 따라 질적 가치가 명확히 달라진다. 통상 열에너지의 가치는 온도가 높을수록 올라가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열에너지 대부분의 온수 수준은 높지 않아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있다. 특히 나무, 석탄, 유류 등 열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단이 다양해 효율 인식도 낮았다. 이러한 질적 차이는 에너지 변환 효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기 직접 가열 방식의 전열기를 이용해서 열에너지를 생산한다고 가정해 보자. 단순하고 저렴한 방식이긴 하지만 변환 효율이 낮아 매우 많은 전력 수요를 유발할 것이다.
이미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 히트펌프는 투입된 전기에너지의 서너 배 열을 이동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열에너지 탄소중립을 위한 유력한 수단이다. 이러한 높은 효율성은 히트펌프가 열을 직접 공급하지 않고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로 열을 이동시키는 원리 때문이다. 이런 장점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에서 히트펌프를 열과 전기를 잇는 P2H(Power to Heat) 섹터커플링 기술로 고려하고 있으며, 단순히 열 생산뿐만 아니라 히트펌프를 이용한 열 저장과 분산열원 공급 수단으로 활용되는 등 다양한 활용법을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히트펌프로 모든 열에너지의 무탄소화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히트펌프의 가장 큰 문제는 생산 온도가 높을수록 효율이 낮아지는 것이다.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500도 이하의 열은 히트펌프가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지만 그 이상에서는 아무리 우수한 히트펌프를 만들더라도 효율이 낮아지게 된다. 산업 부문에서 필요한 열은 100~1500도의 넓은 온도로 분포하고 있다. 특히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과 같은 고온의 열에너지를 요구되는 산업에선 탄소중립을 위한 다른 대체 기술이 필요하다. 예컨대 철강 산업에는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기술이 고려되고 있으며, 대체 기술이 없다면 전기를 연료로 전환하는 P2F(Power to Fuel) 기술을 이용, 수소·암모니아·탄화수소 등으로 변환해서 연소시키는 간접적인 전기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이도 저도 어렵다면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과 같은 최후의 방법도 고려된다.
아쉬운 것은 아직 열에너지의 전기화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다는 점이다. 열에너지의 전기화를 위해 실제 얼마나 많은 전력이 필요할지에 대한 추산도 이뤄진 바가 없다. 2019년 말부터 회자된 탄소중립은 이제 에너지 분야의 핵심 용어가 됐다. 앞으로의 탄소중립 여정에서 열에너지 문제는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다. 2050년이 결코 머지않음을 고려해 열에너지 전기화에 많은 관심과 발전이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김민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minsungk@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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