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수많은 생물 종 가운데 1개 종의 멸종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지역에서 1개 종의 생물 멸종이 그 지역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1963년 미국 생태학자 로버트 페인(Robert T. Paine)은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했다. 페인은 워싱턴주 마카 만(Makah bay)에 실험구역을 설정하고 그곳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불가사리를 모두 제거한 뒤 생태계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천적이 사라지자 홍합의 수가 급증했고, 우점종이 된 홍합이 다른 종을 밀어내 실험구역의 생물종은 1년 만에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이 연구를 통해 페인은 각 생태계에는 그 생태계 전체 종의 다양성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종이 몇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마카 만의 불가사리와 같이 생태계 전체 종의 다양성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종을 '핵심종'(keystone species)이라 이름 붙였다. 핵심종이 사라지면 생태계는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더욱이 핵심종의 멸종이 또 다른 핵심종의 멸종으로 이어진다면 생태계 파괴는 걷잡을 수 없이 가속될 것이다.
페인의 연구 결과는 1개 생물종이 멸종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한편 생태계를 효과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제시했다. 핵심종의 멸종을 막거나 멸종한 핵심종을 복원해서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것이 곧 생태계를 효과적으로 보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전 가치가 있는 야생생물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서 법적으로 보호하는 동시에 복원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현재 세계가 직면한 생물다양성 위기 상황의 심각성을 보면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앞으로 우리가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유엔 산하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의 보고서(2019)에 따르면 지구상의 동식물 약 800만종 가운데 100만종 이상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고, 멸종 속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또한 1964년부터 지금까지 14만종 이상 생물종의 멸종 위험성을 평가해서 적색목록(Red List)을 공표해 온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이들 가운데 4만1000종이 실제적인 멸종위험에 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생물다양성 위기를 인식한 세계 각국과 국제기구는 멸종위기종을 지정하고 보전하려는 실질적 행동에 나서고 있다. IUCN의 '적색목록' 공표 외에도 미국, 호주,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멸종위기종 보전을 법제화하고 멸종위기종 목록을 작성하는 등 보전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유럽연합(EU)이 유럽보호종을 지정하고, 각국은 국가별 멸종위기종을 별도 지정해서 보전한다.
우리 정부도 국제적 움직임에 발맞춰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호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환경부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지정하여 법령으로 공포하고,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무단으로 포획·훼손하는 등의 행위를 단속·처벌하고 있다. 또한 멸종위기종 가운데 우선복원 대상종을 선정하여 종별보전계획을 수립하는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 서식·자생지 보호와 증식·복원에 힘쓰고 있으며, 매년 4월 1일을 '멸종위기종의 날'로 지정하여 생물종 보전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있다.
올해 환경부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목록 개정작업을 마쳤다. 2017년 이후 5년 만의 개정이다. 이로써 내년부터 법적으로 보호받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267종에서 282종으로 늘어난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보호하려는 정부와 국민적 노력에도 급격한 환경변화, 서식지 훼손 등 위협 요인으로 말미암아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종 숫자는 지속 증가하는 추세다. 1989년 환경부의 전신인 환경청에서 특정야생동식물 92종을 지정하여 보호를 시작한 이래 안타깝게도 3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멸종위기종은 3배 넘게 증가했다. 급격히 증가하는 멸종 위협 속에서 이에 대응해야 하는 환경부의 역할도 더욱 커지고 있다.
앞으로도 환경부는 한반도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보전을 위한 노력을 이어 갈 것이다. 멸종위기종은 그 종의 보전 또는 멸종이 그 생태계 전체의 생물다양성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생물다양성의 보루에 빗댈 수 있다. 환경부는 야생생물의 생존환경 변화와 멸종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감시할 것이며,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보전·복원을 위한 노력을 이어 갈 것이다.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 나아가 한반도 생물다양성 보전이라는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선 국민의 관심과 협조가 필수적이다. 환경부는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여 멸종위기종 보전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정책 방향성에 대한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일상에서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행동의 실천을 이끌 것이다. 이를 통해 상호보완적이고 발전적인 멸종위기종 보전 정책을 완성할 것이다.
<필자 소개>
유제철 환경부 차관은 30년 동안 환경부와 산하기관에서 근무한 환경정책 전문 관료다.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해 영국 맨체스터대 환경경제학 석사, 금오공대 환경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행정고시 35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환경부 자원순환국 자원순환정책과, 자연보전국 자연정책과, 물환경정책국 유역총량과 등에서 경력을 쌓고 대구지방환경청장 및 환경부 대변인을 비롯해 생활환경정책실 실장을 역임했다. 2020년 1월 환경부에서 명예퇴직한 후에는 환경산업기술원장을 거쳤다. 합리적 사고와 소탈한 성격으로 주변 신임이 두텁다.
유제철 환경부 차관
※ '89년~'96년까지는 특정야생동 식물 지정 종 수
< '22년 분류군별 변경 종 현황 >
※ 양서 파충류, 무척추동물, 해조류, 고등균류는 변동사항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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