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전문가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디지털시대를 법률, 경제, 문화 등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해 왔다. 아름다운 디지털 꽃길만 바라보며 달려왔다. 문득 돌아보고 저 길이 정녕 꿈꾸던 길인가 하고 놀랄 때가 있다. 자랑스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길을 옳다고 단정하면서 성찰과 가치 판단의 시간을 놓친 것은 아닐까, 디지털에 매몰되어 빠뜨린 것이 있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땐 소름이 돋는다.
2000년 4월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창업자 윌리엄 넬슨 조이는 '미래는 왜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Why the future doesn't need us?)라는 제목의 글에서 유전공학, 나노기술, 로봇, 인공지능이 가져올 암울한 미래를 전망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런 속내를 감출 것이라고 기대하던 기업가의 글이기에 반향이 컸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줌으로써 신 중 신인 제우스의 미움을 받았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베푼 것이 은혜일까. 해악일까. 인간은 프로메테우스가 준 불을 바탕으로 다양한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렇고 그런 동물의 삶에서 벗어나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디지털로 만드는 미래가 항상 옳다고 할 수 없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주었다는 이유로 제우스에게 끌려갔다. 제우스는 노여워하며 인간에게 불을 준 그를 벌하려 했다. 프로메테우스가 변명했다. “제우스여, 노여움을 거두소서. 제가 인간에게 불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 대신 인간에게 희망도 주었습니다. 인간은 한 치 앞도 알지 못한 채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무한정 발전시키고, 결국 스스로 파멸할 겁니다.” 신화 속 숨은 이야기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필자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기업이 과학기술, 정보통신, 디지털을 맹신하고 미래로 달리고 있다. 기업은 19세기 아프리카·아시아·아메리카를 석권하던 유럽 제국주의 군대 같고, 전문가는 그들 앞을 열어 준 선교사 같다.
디지털은 자본주의 경제와 소비사회를 뒷배 삼아 엄청난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인간은 도구를 집기 위해 직립보행을 하고, 손의 능력을 길렀다. 불을 이용하게 되면서 함께 살 집과 의복을 갖추는 등 스스로 변화했다. 지금은 과학기술이 우리를 높은 아파트, 정교한 사무실에 가둔다. 우리의 두뇌나 수첩·공책에 적던 생각·글과 전화번호 등 연락처는 기업의 서버에 저장되고, 더 이상 우리의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자아가 되어 사이버 공간을 돌아다닌다. 과학기술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조작법·사용법을 요구한다. 서비스 제공 과정에 이용자인 인간을 참여케 하고, 콘텐츠 공급 등 대가 없는 노동을 사실상 강제한다. 인간은 디지털 서비스에 종속되면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거나 존재 그 자체가 의미 없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은 자기 자신 안에 갇혀 있지 않고 바깥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바라볼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다. 디지털 발전이 항상 옳고 바른 방향이라고 할 수 없다. 과학기술로 인간의 노동이 박탈되고 다음엔 인간의 자본이 박탈되고 궁극엔 인간 자체가 박탈되는 사탄의 마법이 아닌지 의심하고 의심해야 한다. 디지털 발전이 아무리 빠르더라도 이제 뒤를 돌아보고 성찰과 가치 판단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인간이 인간과 공존하고 인간이 도구·기계·인공지능과 공존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공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행동은 어떤 가치에 의하여 뒷받침해야 하는지 되새겨야 한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토머스 앤더슨(키아누 리브스 분)처럼 빨간 약을 먹고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디지털이 가져오는 균열에 대비해야 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