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국가다울 수 있는 본질로서의 이데아가 있는가. 국가가 추구하는 이데아가 하나라면 모든 국가의 개성은 사라지고 하나의 통일국가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국가 간 인면수심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리스는 도시국가로 번성했다. 통일국가 전 단계인 부족국가로 보긴 어렵다. 통일을 원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도시 형태가 성인 시민 중심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에는 적당한 규모이기에 그럴 수 있다. 그리스 올림푸스산으로 가 보자. 그리스 신은 제우스를 주신으로 해서 여러 신이 자신의 위상과 함께 역할을 맡아 할거한다. 신의 이데아는 없고 신들 간 차이가 존재했다. 서로가 지켜 주는 도시국가도 따로 있었다.
그와 달리 중세는 여러 국가가 난립했지만 신은 하나다. 하나님을 위해 국가 간 경쟁하는 시스템이다. 외세 침략, 신성 모독에 대해선 함께 싸웠다. 신의 나라와 교황을 중심으로 이뤄진 봉건국가 협의체다. 근대 이후엔 각 국가의 왕이 신의 자리를 넘보기 시작했다. 통일국가를 위한 경쟁이 시작됐다. 중세 이후 각 국가의 개성을 보기 어렵다. 현재 유럽은 유럽연합(EU)이라는 단일국가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회원국이 힘을 합쳐 미국에 빼앗긴 영광을 되찾자는 것이다. 그런데 잘 안 된다. 회원국의 형편과 이해가 다르다. 낡은 경쟁시스템도 원인이다. 회원국의 개성에 따른 차이를 시너지로 연결하지 못한다. 국가의 이데아를 찾기 위한 경쟁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경쟁으로 이어졌다. 세계를 상대로 통일국가 모델이 되기 위한 다툼이다. 지금은 어떤가. 부자가 되기 위한 경쟁이다. 국민의 배를 불리는 국가가 최고 국가 이데아로 평가받는다. 자유·민주도 경제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개성 없는 국가 경쟁이 옳은가.
지난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모든 정책을 썼지만 실패했다. 그런데 태평양 건너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니 부동산 가격이 곧바로 잡혔다. 오히려 부동산 가격의 추가 하락이 걱정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미국 시장 동향을 본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찾는다. 이게 옳은 세상인가. 미국·중국 등 글로벌 강국의 21세기형 식민지가 되는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 대한민국의 개성과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과학기술이 정보통신과 연결돼 디지털 시대를 열고 있다. 디지털 국가에서 답을 찾으면 어떨까.
국가의 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이다. 헌법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가 우리 영토이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말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어떨까. 오프라인에 획정된 영토를 말한다면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 기업은 해외로 진출하고 외국 기업은 들어와 있다. 그것뿐인가. 경제의 절반 이상이 온라인, 모바일, 메타버스로 넘어가고 있다. 그것은 우리 영토가 아닌가. 오프라인 영토 이외에 온라인, 모바일, 메타버스의 디지털 영토를 넓히자. 그곳엔 경계도 없다.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으면 내 땅이 된다. 국민은 어떤가. 원래 여러 민족으로 이뤄진 국가도 있지만 우린 단일민족이고, 그것을 강조했다. 외침을 많이 당한 국가에서 대내외적 단결을 위해서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다문화 가정 확산과 외국인의 국내 이주가 많아졌다. 그들도 우리 국민이다. 그것뿐이랴. 온라인, 모바일, 메타버스를 보자. 그곳에는 사람의 정신활동을 모방하거나 도와주는 아바타, 가상인간, 인공지능 등 비인간 존재체가 있다. 법인격이 없을 뿐 그들도 우리 국민이다. 온라인·사이버 주권도 중요하다. 외국이나 범죄단체로부터 우리 온라인·사이버 공간을 지켜야 한다. 그것도 우리 영토이고, 우리 국민이 생활하는 터전이다. K 콘텐츠가 글로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이 진출한 세계 시장도 우리의 디지털 주권이 미치는 곳이 아닌가. 흙냄새에 집착하지 말자. IT 강국을 넘어 디지털 강국을 만드는 것만이 대한민국의 미래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