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슈프림과 상표 식별력

[ET단상]슈프림과 상표 식별력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이 한국에서 상표권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슈프림이 상표로 등록되지 않았다 말인가?'

슈프림 브랜드를 아는 젊은 세대도 같은 궁금증이 일 것 같다. 상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현재 유통되는 슈프림 브랜드 가운데 상당수가 '짝퉁'일 수 있겠다.”

사실이 그렇다. 현재 유통되는 의류, 액세서리 등 슈프림 마크가 새겨진 제품의 95% 이상이 짝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단속할 수가 없다. 슈프림 상표가 국내에 등록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상표법은 '상표로 등록하려면 상표의 구성이 특정한 제품의 출처 표시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식별력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품의 명칭·출처·성질 등을 표시하는 상표는 출처 표시 기능이 없어서 식별력이 없다고 보고 상표 등록을 불허한다.

다만 오랜 기간 사용한 결과 소비자에게 특정 제품의 출처 표시로 알려지는 경우 사후에 상표 등록을 인정한다.

이를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취득했다'고 한다. 슈프림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특허청은 그동안 슈프림 브랜드가 식별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가 최근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취득한 것으로 인정했다. 식별력 유무 판단은 상표 행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가운데 하나다.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식별력 인정에 인색한 나라로 언급된다. 슈프림 상표가 미국과 유럽에서 식별력을 인정받아 이미 등록된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기준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슈프림은 소비자에게 이미 유명 브랜드로 여겨진다. 그동안 짝퉁이 난무해서 K-컬처로 한층 고양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손상되는 건 아닌지 염려했다. 특허청의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나라는 한때 '짝퉁 천국'으로 불렸다. 국제 사회에서 비난받기 일쑤였다. 이태원은 '짝퉁 메카'로 해외 관광객의 방문 필수 코스가 됐다. 짝퉁을 만드는 업자는 외화를 획득한다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일부 언론은 여기에 동조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연출됐다.

위조상품 유통으로 우리나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우리나라 상표법에 짝퉁 제조·유통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조항이 거의 반강제로 도입됐다. 우리나라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유명 상표 보호 규정을 두게 된 배경이다.

작퉁 슈프림이 출연하게 된 배경은 이와 다르다. 과거에는 해외 유명 상표가 국내에 출원되지 않았을 때 국내 브로커가 상표를 선점하거나 상표 보호가 되지 않는 미출원 상표의 짝퉁을 제조·판매했다.

슈프림은 상표를 제때 출원했지만 식별력을 이유로 등록이 거절되는 사이에 짝퉁이 출현했다.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취득해서 특허청의 공고 결정을 받기까지 3년이 걸렸는데 그 사이에 이미 짝퉁이 널리 퍼졌다. 그러는 동안 우리나라 국격은 손상될 수밖에 없었다.

상표 제도는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탄생한 법 제재 도구다. 다른 사람의 신용에 편승해서 이득을 취하려는 자를 시장에서 도태시킴으로써 상표권자로 하여금 제품과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투자와 노력 유도가 목적이다. 이러한 상표 제도의 기본 목적이 도전받는다면 어떠한 변명도 정당화될 수 없다.

식별력 판단도 수학 공식처럼 천편일률적이 아니라 시장 상황과 소비자 행태를 보고 상표제도의 목적이 발휘되는 방향에서 유연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준석 특허법인 위더피플 대표변리사 leejs@wethepeop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