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높아진 금리와 물가 때문에 경영환경이 더 나빠졌어요. 고생하는 직원들 설 명절 떡값은 챙겨주지 못할 것 같아 양해를 구했습니다.”
지난 17일 찾은 경기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서 만난 한 제조업 대표는 담배를 꺼내 물며 이같이 말했다.
매서운 겨울 바람이 반월산단 골목 곳곳을 후볐지만 그는 얼어붙은 경기 회복을 더 걱정했다.
그는 “요즘은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많아지고 있다”며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커질수록 지역·국가 경제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의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월산단은 한국 최대 국가산단으로 손꼽히지만 경제 한파 때문인지 생기를 잃은 듯했다. 기업이 늘어서 있는 골목에는 종종 흡연하러 나오는 직원만 있었고, 문이 열려있는 공장 내부에는 직원 없이 장비와 제품 등만 어지럽게 널려 있기도 했다. 일부 기업은 폐업을 한 탓인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반월산단과 이웃하고 있는 시화국가산업단지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굴뚝으로 하얀 연기가 올라와 활기가 느껴지면서도 주변 곳곳에는 문 닫은 기업이 눈에 띄었다. 공장 매매와 임대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공단 벽과 전봇대에는 '중고차' '지게차' '공장 입주' '장비 매입' 등 내용이 담긴 스티커가 가득했다.
반월·시화산단의 한 공인중개사는 “요즘 아파트 가격은 떨어졌지만 공장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 거래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금리가 5~6%대에 이르면서 매매나 임대거래는 물론 문의조차도 거의 없다”며 “정말 급급매가 아니면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 반월·시화산단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어둡다 못해 깜깜하다”고 말했다.
민족 대명절을 앞두고 있지만 어려운 경기전망에 기업 표정은 어둡다. 3고(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인한 자금조달 여건 악화와 원자재 가격 상승, 인건비 상승, 경영상황 악화 등 악영향이 겹쳤기 때문이다.
안산상공회의소가 최근 관내 기업 125개사를 대상으로 기업경기전망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기준치 100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65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 74, 경기도 평균 68보다도 낮았다.
철강금속(100)을 제외한 운송장비(87), 섬유의복(78), 기계설비(67), 비금속(67), 목재종이(57), 전기전자(50) 등 전 분야에서 부진이 예상되고, 석유화학(35) 분야는 부진을 넘어 침체까지 전망된다.
지난해 연초 대비 매출 실적 질문에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응답이 60.0%로 가장 높았고, '소폭 미달'은 42.4%, '크게 미달'은 17.6%로 나타났다. 영업이익은 응답 기업 72.8%가 '미달'이라고 답했다.
시흥상공회의소도 관내 기업 100개사를 대상으로 BSI를 조사한 결과 78이 나왔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 인건비 상승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어 대책 마련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산상의 관계자는 “고금리, 고물가 상황이 계속되고 원자재·에너지 가격 상승 등 대외요인으로 인해 새해에도 안산지역 기업 경영 환경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며 “경제 리스크 관리를 위해 정부가 역점을 둬야 할 주요과제 중 하나로 '자금조달시장 경색 완화'를 꼽은 만큼 기업 자금 여건 해결을 위한 정부 정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안산=김동성기자 est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