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요 국가들의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글로벌 밸류체인이 해체되고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가속화된 디지털전환, 기후위기 심화 등 세계적으로 경제·사회·산업이 급변화하는 대전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 경쟁력을 지키고 승자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국가 엔진이 되는 신산업을 지속 육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신기술을 확보해서 새로운 가치로 연계하는 산업혁신 견인이 더욱 중요해진다. 하지만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신기술 확보, 혁신적인 제품·서비스 창출과 함께 그 산업이 가야 하는 새로운 길까지 만들며 전진해야 하는 어려움을 넘어서야 함을 의미한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미래성장과 기술주권 확보를 위한 12대 국가전략기술을 발표했다. 국가전략기술은 공급망·통상, 신산업, 외교·안보 등 기술 주권 관점에서의 전략적 중요성을 기준으로 선정돼 향후 경제 및 외교 안보와 신산업 육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선정된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대해서는 시급성과 파급력을 기준으로 프로젝트도 추진될 예정이라고 한다.
국가전략기술의 육성과 병행해 룬샷을 시도하는 기술 또한 신산업으로 가는 혁신적인 길이 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국가전략기술이 이기는 바둑을 위해 몇 개의 돌을 전략적 요충지에 놓는 것이라면 룬샷 아이디어는 그러한 포석들에 있는 많은 간극을 연결하고 채워서 전체적인 산업혁신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묘수풀이라 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룬샷 아이디어는 신약, IT 기기 등 신산업 분야에서 성공한 사례와 실패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사장될 뻔했던 물질을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신약으로 출시한 머크사의 성공 사례와 애플보다 먼저 스마트폰의 컨셉이 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였으나 시장으로 연결해내지 못한 노키아의 실패 사례 등을 통해 룬샷 아이디어의 소중함과 가능성에 대해 논의해볼 만하다.
최근 도전적 R&D 지원, 실패를 허용하는 연구문화 확산 등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룬샷과 같은 아이디어에 대한 기술개발도 과감하게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장 연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국내에서도 성공 경험이 쌓일 수 있도록 더욱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 또한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지속 제시하는 가운데 혁신 과정을 이해하고 후원할 수 있는 산·학·연 문화를 함께 조성해야 한다.
이러한 문화조성과 연구자들의 노력 그리고 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하는 정부와 민간의 후원이 신산업 창출이라는 퍼스트 무버의 길에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제조 선진국은 신기술·신산업을 창출하기 위해 퍼스트 무버가 되어 산업혁신의 길을 개척하는 방법을 지난 몇 세기 동안 체득해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의 변신에 대해 노력한 지 이제 10여년 정도로, 아직은 길을 가는 법과 길을 내는 법을 동시에 배워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전진하는 국가적 에너지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 또한 잘 극복해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산업 대전환이라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눈보라 속에 있는 듯한 지금 “눈 내린 들판을 걸을 때는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라는 서산대사의 '답설야중거' 구절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신기술·신산업의 길을 개척하는 한국판 산업혁신의 선구자들이 서산대사가 느꼈을 눈 덮인 들판에 내디디는 첫걸음의 고민과 그 걸음이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길이 될 것이라는 무게를 느끼고 걷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산·학·연·관 모두 이러한 선구자들의 노력에 관심을 기울이길 바라며, 대전환의 눈보라 속에서 신산업을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디디기 위한 고민 및 해결방안 마련에 민간과 정부가 함께 협력해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민선 한양대 HYU-KITECH 공동학과 학연교수, kimms62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