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인류를 다시 달로 보내는 아르테미스 미션. 그 첫걸음이 되는 ‘아르테미스 1호’의 가장 큰 방해물 중 하나가 기상 여건이었다. 특히 번개는 우주 발사체의 전자장치에 이상을 초래할 수 있어 경계대상이 됐다.
하지만 최근 유럽 연구팀이 멀리 떨어진 곳으로 번개를 유도하는 레이저 피뢰침을 개발했다고 밝혀 번개에 대한 걱정은 앞으로 한결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제네바대학에 따르면 ‘에콜 폴리테크니크’(Ecole Polytechnique)의 오렐리앙 우아르 박사 등이 참여한 유럽 연구팀은 최근 알프스 봉우리 중 하나인 젠티스 정상(해발 2500m)에서 ‘레이저 피뢰침’(LLR)을 실험한 결과를 과학 저널 '네이처 포토닉스'(Nature Photonics)에 발표했다.
번개를 피할 방법은 1752년 벤저민 프랭클린이 발명한 피뢰침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 금속으로 된 막대를 높이 세워 시설물 주변에 내리치는 번개를 유도하고, 이 막대와 연결된 금속 선으로 번개의 전하를 지면의 접지선으로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금속 피뢰침이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피뢰침의 높이만큼만 보호한다는 한계가 있다. 피뢰침이 10m 높이에 설치됐다면 낙뢰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반경도 10m정도에 한정된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공항이나 우주발사장, 핵발전소 등 규모가 큰 민감한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왔다.
그리고 대안으로 제시된 수많은 방법 중 하나가 이번에 결과를 발표한 레이저 피뢰침(LLR; Laser Lightning Rod)이다. 고출력 레이저로 이온화된 공기를 만들어 전도체가 되게 함으로써 번개를 유도하는 레이저 피뢰침은 레이저로 전통 피뢰침의 높이를 연장함으로써 낙뢰 보호 영역을 넓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연구돼 왔다.
결과적으로 레이저 피뢰침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우아르 박사 연구팀은 지금까지 실험실 환경에서만 진행돼 온 LLR을 2502m 높이의 젠티스 봉우리 정상에 설치된 '스위스콤'(Swisscom) 송신탑 주변에 설치하고 실제 번개가 치는 상황에서 성능을 실험했다.
이 송신탑은 연간 약 100차례 벼락이 떨어지는 유럽에서 번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구조물 중 하나로 꼽히는데, 끝에는 전통적인 피뢰침이 설치돼 있다.
연구팀이 개발한 레이저 피뢰침은 너비 1.5m, 높이 8m, 무게 3t 규모로 제작됐으며, 초당 1000 펄스의 레이저를 발사할 수 있다. 이 레이저 피뢰침은 2021년 6∼9월에 폭풍이 예보될 때마다 가동됐으며 주변의 항공 교통은 안전을 위해 차단됐다.
논문 제1저자인 우아르 박사는 "레이저 피뢰침을 가동했을 때와 안 했을 때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는데 목표가 있었다"면서 "송신탑 끝에 레이저 선이 연장됐을 때와 그냥 벼락을 맞았을 때 수집된 자료를 비교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1년 가까이 방대한 자료를 분석한 끝에 레이저 피뢰침이 번개를 효율적으로 유도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개처럼 레이저 도달 거리를 방해하는 나쁜 기상 조건에서도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논문 책임저자인 제네바대학 응용물리학 교수 장-피에르 울프 박사는 이와 관련, "레이저 피뢰침을 활용한 첫 번개부터 송신탑에 닿기 60m 전부터 레이저 빔을 따라온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이는 피뢰침의 낙뢰 보호 반경이 120m에서 180m로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레이저 도달 거리를 더 늘려갈 계획이며, 궁극에는 레이저 피뢰침을 10m까지 확대해 도달거리를 500m까지 연장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번 연구는 지난 5년 동안 400만유로(한화 54억원)이 투입된 프로젝트의 성과이다. 실제 환경에 투입되더라도 전통적인 피뢰침보다는 훨씬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이보다 값비싼 과학 장비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효용성이 기대된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